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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에서 배우는 복음의 능력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8. 2.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요한복음 4:28)

요한복음 4장은 단순한 만남의 기록이 아닙니다. 이 장면은 복음이 어떻게 한 인간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한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가로 물을 길러 옵니다. 그것도 한낮입니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시간에 혼자서 물을 뜨러 오는 것은 당시 문화에서는 이상한 일입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아침이나 저녁, 시원한 시간에 함께 모여 물을 길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홀로, 그것도 사람들의 눈을 피하는 듯한 시간에 우물가에 나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삶은 도무지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했습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함께 사는 남자는 그 중 누구도 아닙니다. 당시 사회에서 이것은 심각한 도덕적 오점이며, 비난의 대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정죄했고, 그녀는 스스로도 자기 인생이 부끄러웠을 것입니다.

그녀의 손에는 물동이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물을 담는 도구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그녀가 매일 반복하던 인생의 상징이었습니다. 삶은 계속해서 갈증을 주었고, 그녀는 또다시 물동이를 들고 우물가를 찾았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혼자서, 숨으며 말입니다.

그런 그녀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십니다. 유대인 남자와 사마리아 여자의 대화는 당시로선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유대인은 사마리아인을 경멸했고, 남자와 여자가 공개적으로 대화하는 것도 드문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모든 문화적 장벽과 편견을 넘으십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십니다. 그 단순한 부탁으로 시작된 대화는 그녀의 인생 깊은 곳까지 들어갑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과거를 꿰뚫어 보십니다. “
네게 남편이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사람도 네 남편이 아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은 그녀를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그 대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될 것이다.”(요 4:14)

이 말씀은 그녀의 목마름, 곧 단순히 물을 향한 갈증이 아니라 사랑, 의미, 자존감, 회복을 향한 갈증을 겨냥합니다. 그리고 그 갈증을 해갈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 바로 예수님 자신임을 밝히십니다. 그 절정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다.”(요 4:26) 이 말씀은 단순히 “내가 그 메시아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헬라어 원문에서 이 문장은 “에고 에이미” 즉, “I AM”, 스스로 있는 자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는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밝히신 바로 그 이름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 메시아, 참된 생명의 근원으로 계시하십니다. 그녀의 죄를 아시면서도 거절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생수를 제안하십니다.

이 순간, 여인은 중요한 결정을 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갑니다. “
자기가 한 일을 다 말한 사람을 만났다”고 외치며 사람들을 예수께로 인도합니다. 왜 그녀는 물동이를 버렸을까요? 그녀에게 물동이는 단지 물을 길어 올리는 그릇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자기 힘으로 갈증을 채우려던 방식, 즉 인간적인 시도, 자기 보호, 자기 만족, 자기 인생의 수단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순간,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더 이상 숨지 않습니다.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복음이 그녀의 부끄러움을 덮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살던 여인이 이제는 그들에게 달려가 복음의 증인이 됩니다. 복음은 이렇게 죄인을 증인으로 바꾸는 능력입니다. 수치심을 자랑으로 바꾸고, 숨던 자를 파송된 자로 바꾸는 힘입니다.

요한복음 4장은 단지 한 여인의 감동적인 변화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 각자에게 묻습니다. “
너는 어떤 물동이를 붙들고 있는가?” 우리는 각자의 ‘물동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성과일 수 있고, 어떤 이에게는 관계, 돈, 인정 욕구, 중독, 자기 보호기제일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겉보기엔 문제 해결을 위한 도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를 끊임없이 숨게 하고, 의존하게 하고, 소모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는 그 물동이를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진짜 필요를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단순히 죄 용서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새로운 정체성, 새로운 삶의 방식, 새로운 사명을 줍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
내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다.” 그렇다면 이제는 물동이를 버리고, 사람들 속으로 달려가야 할 때입니다.

요한복음 4장은 한 여인의 삶이 복음으로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물가에 서 계신 예수님은 오늘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하십니다. 물동이를 계속 붙들고 살 것인가? 아니면 그분을 믿고, 따라가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 당신의 물동이는 무엇입니까? 이제, 그 물동이를 버릴 준비가 되었습니까?

복음은 죄를 드러내지만 정죄하지 않고 생명을 제시합니다. 물동이는 자기가 의지하던 방식의 상징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분 자신'이 해답이심을 밝히십니다. 이 복음을 진심으로 믿어야 합니다. 복음을 믿는 자는 변화되고, 복음을 전하는 자로 세워집니다. 당신은  누구에게 복음을 나누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