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무엘상 3장 1절 ~ 4장 1절
"엘리가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하니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사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사무엘상 3:9~10, 19~20)
어느 시골 교회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누구보다 눈이 밝아 먼 산의 새 이름까지 알아맞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그의 눈은 점점 흐려졌고, 나중에는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조차 분간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의 육신의 눈이 어두워지는 것과 함께 그의 영적인 눈도 함께 흐려져 갔다는 사실입니다. 한때 하나님의 말씀에 예민하게 반응하던 그의 심령은 이제 아들들의 노골적인 죄악 앞에서도 형식적인 꾸짖음 한마디로 넘어가는 무감각한 상태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무엘상 3장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엘리 제사장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읽을 때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해진 것일까요, 아니면 그 말씀을 들을 귀가 희귀해진 것일까요?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언어도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지만, 하늘과 땅 자체가 하나님의 존재와 영광을 날마다 선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에서 같은 진리를 확증합니다. 창세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능력과 신성이 만드신 만물 속에 분명히 드러나 있어서, 사람이 핑계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즉 하나님은 결코 침묵하신 적이 없습니다. 문제는 언제나 듣는 자의 상태에 있습니다. 마치 라디오 전파가 온 방 안에 가득 차 있어도 수신기가 고장 나 있으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엘리와 그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전파 안에 살면서도, 그들의 영적 수신기가 완전히 망가져 있었기에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런 시대 한복판에서, 하나님은 놀랍게도 아직 여호와를 알지도 못하는 어린 소년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에 흐르는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시편 8편은 하나님께서 어린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신다고 노래하고, 훗날 예수님도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왜 하나님은 지혜롭다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에게 나타내실까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사람의 지혜나 경력이나 지위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직 은혜로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엘리는 대제사장이라는 최고의 종교적 지위에 있었지만 그 지위가 그를 하나님의 음성 앞으로 인도해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사무엘의 순전한 귀가 먼저 열렸습니다.
사무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매우 인간적이고 따뜻한 장면을 보여줍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셨을 때, 사무엘은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인 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엘리 제사장이 부르는 줄 알고 달려갔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을 반복해서 달려가고 나서야 늙은 제사장 엘리가 비로소 깨닫습니다. "아, 이것은 내가 부른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시는 것이구나."
여기서 우리는 엘리의 마지막 남은 아름다움을 봅니다. 자신은 이미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지만, 그는 사무엘에게 이렇게 가르쳐줍니다. "가서 누우라.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너는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신앙의 자세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무엇을 말할 것인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실 것인가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입니다. "말씀하옵소서, 듣겠나이다"라는 이 짧은 고백이야말로 모든 신앙생활의 출발점입니다.
네 번째 부르심에서 사무엘은 마침내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중에 한 가지 일이 일어날 것인데,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릴 만큼 놀라운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엘리 집안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엘리가 자기 아들들의 죄악을 알면서도 금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받지 못하리라는 무서운 선언이었습니다.
어린 사무엘에게 이것은 얼마나 감당하기 어려운 짐이었을까요? 자신을 길러준 스승이자 아버지와 같은 존재에게, 그의 집안에 임할 심판을 전해야 하는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아침이 되어도 그 말씀을 차마 엘리에게 전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엘리는 사무엘을 불러 진실을 요구했습니다. "하나라도 숨기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결국 사무엘은 숨김없이 다 전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엘리의 마지막 신앙고백을 듣습니다. "그는 여호와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자신과 자신의 아들들,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모든 비극적인 심판 앞에서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선하신 분으로 인정했습니다. 비록 그의 삶이 실패로 얼룩졌을지라도, 이 마지막 고백만큼은 그가 완전히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말씀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사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말씀이 희귀했던 시대는 이렇게 막을 내립니다. 늙은 세대가 저물고, 하나님은 준비된 한 사람을 통해 다시 온 이스라엘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어떠합니까. 24시간 텔레비전과 라디오, 그리고 손안의 스마트폰에서 끊임없이 무언가가 흘러나옵니다. 정보의 양으로 보자면 인류 역사상 이보다 더 풍요로운 시대는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처럼, 우리는 여전히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토록 많은 소리 속에서, 정작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생명수 같은 말씀은 오히려 희귀해졌습니다.
이것은 마치 수천 개의 메시지 알림이 쏟아지는 휴대전화를 붙들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 안에 있는 가족의 진심 어린 한 줄은 놓쳐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소리는 넘쳐나지만 정작 들어야 할 음성은 소음에 묻혀버리는 시대, 그것이 오늘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언젠가 서울의 한 목사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이렇게 적으냐고, 좀 더 적극적으로 광고하듯 외치며 전해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이미 말씀을 공개하고 있는데 이보다 더 어떻게 적극적일 수 있겠느냐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덧붙였습니다. 엘리야가 홀로 남았다고 절망하며 죽고 싶다고 탄식했을 때,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을 이미 남겨 두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백성은 언제나 요란하게 드러나기보다 조용히 숨겨져 있었습니다.
교회를 소개해달라는 분들에게 저는 늘 발품을 팔라고 말씀드립니다. 며칠 쓰다 버릴 물건 하나를 사면서도 우리는 인터넷을 뒤지고 가격을 비교하며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런데 영원한 생명을 좌우하는 말씀 앞에서는 왜 그런 수고를 하지 않는지 묻고 싶습니다. 가까운 곳에 없다면 다른 도시까지라도 눈을 넓혀보시기 바랍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하나님은 반드시 참된 말씀을 지키는 자들을 남겨두셨습니다. 때로는 세상에 잘 알려진 이름들이 오히려 그 소임을 다했을 수도 있습니다. 마치 엘리가 저물고 사무엘이 떠오르듯이 말입니다.
말씀이 희귀한 시대는 그때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 시대 한복판에서도 하나님은 준비된 한 어린아이의 귀를 여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엘리가 사무엘에게 가르쳐준 그 짧은 고백입니다.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 같은 심령에게 나타내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도 오늘 그 순전한 자세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에게 분별력을 주셔서 소음 가운데서도 생명의 말씀을 바로 알아듣는 지혜와 계시의 영이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구약 말씀 묵상 > 사무엘상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무엘상 - 갈고리에 걸린 은혜, 제사를 멸시한 제사장 (0) | 2026.08.06 |
|---|---|
| 사무엘상 - 저울 위에 선 인생, 한나의 찬양 (1) | 2026.08.04 |
| 사무엘상 - 닫힌 태 열린 하늘, 한나 이야기 (0) | 2026.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