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에벤에셀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서 다곤 곁에 두었더니, 아스돗 사람들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또다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뚱이만 남았더라. 그러므로 다곤의 제사장들이나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는 자는 오늘까지 아스돗에 있는 다곤의 문지방을 밟지 아니하더라.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하니,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하게 할지라 그의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찌하랴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가드로 옮겨 가라 하므로 이스라엘 신의 궤를 옮겨 갔더니, 그것을 옮겨 간 후에 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 환난을 그 성읍에 더하사 성읍 사람들의 작은 자와 큰 자를 다 쳐서 독한 종기가 나게 하신지라. 이에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에그론으로 보내니라 하나님의 궤가 에그론에 이른즉 에그론 사람이 부르짖어 이르되 그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 하고,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그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이 죽임 당함을 면하게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읍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한 종기로 치심을 당해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사무엘상 5:1~12)
이스라엘 진영에 언약궤를 빼앗겼다고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었다고 전해졌습니다. 그 소식을 듣던 늙은 제사장 엘리는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며느리는 아이를 낳다가, 아들이라는 말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렇게 중얼거리며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가봇, 영광이 떠났다." 이보다 더 참담한 장면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기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없다고 선언하는 장면입니다. 만약 오늘 우리 교회가 이런 처지에 놓인다면 어떨까요? 예배당 문이 닫히고, 지도자들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이제 하나님은 여기 안 계신다"고 말하는 순간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런데 성경은 여기서 이야기를 끝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기서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은 이스라엘 백성의 손에 달려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승리를 자축하며 언약궤를 그들의 신 다곤의 신전으로 옮겼습니다. 마치 전쟁에서 이긴 나라가 패전국의 국기를 빼앗아 자기네 국회의사당에 걸어놓는 것과 같은 행동이었습니다. "우리 신이 너희 신을 이겼다"는 선언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신전 문을 연 제사장들은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다곤 신상이 언약궤 앞에 엎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얼굴을 땅에 대고, 마치 신하가 왕 앞에 엎드리듯이 말입니다. 그들은 우연이라 여기고 신상을 다시 세워놓았습니다. 하지만 그 이튿날, 다곤은 또다시 엎드러져 있었고 이번에는 머리와 두 손이 잘려나가 문지방에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고대 근동의 풍습 하나를 떠올려 보십시오. 전쟁에서 패배한 자의 목을 베는 것은 완전한 굴복의 표시였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의 목을 베었을 때도, 블레셋 사람들이 전사한 사울의 목을 베어 성벽에 걸었을 때도 같은 의미였습니다. 그러니까 다곤의 머리와 손이 잘렸다는 것은 신들의 전쟁에서 다곤이 완전히 패배했다는 뜻입니다. 손이 없으니 무엇도 붙잡을 수 없고, 머리가 없으니 무엇도 생각할 수 없는 신, 처음부터 아무 힘도 없던 우상이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입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집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 사건을 통해 다곤의 무력함을 깨닫기는커녕, 오히려 그 문지방을 신성한 곳으로 여기며 밟지 않고 넘어 다니는 풍속을 만들어버립니다. 마치 화재로 다 타버린 건물의 잔해 앞에서 그 잿더미를 향해 절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이미 무너진 것 앞에서조차 새로운 미신을 만들어내는 존재입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훗날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도 "문턱을 넘어 다니는" 이방 풍속을 따르는 자들을 책망합니다(습 1:9). 포악과 거짓을 행하면서도 벌을 피하려고 문턱을 밟지 않고 뛰어넘어가는 자들, 신앙의 형식은 지키면서 정작 삶은 우상숭배로 물들어 있는 자들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문턱"이 있지 않습니까? 주일마다 예배당 문턱은 넘으면서, 정작 삶의 방식은 세상의 우상인 돈, 성공, 인정, 안락함을 섬기는 방식 그대로인 경우 말입니다. 형식은 신앙이지만 실질은 미신인 삶입니다.
다곤의 무너짐으로 이야기가 끝났다면 그저 흥미로운 일화로 남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본문은 여기서 "여호와의 손"이라는 표현을 세 번이나 반복하며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아스돗 사람들에게 독한 종기의 재앙이 임합니다. 놀란 방백들이 궤를 가드로 옮기지만, 거기서는 더 큰 재앙이 임합니다. 다시 에그론으로 옮기지만, 에그론 사람들은 아예 비명을 지르며 거부합니다.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다 죽이려 하는가!"
이 장면을 떠올리면, 마을 주민들이 혐오 시설 유치를 결사반대하며 마을 입구에 드러눕는 모습이 겹쳐집니다. 고압 송전탑이든 폐기물 처리장이든, 사람들은 자기 마을에 그런 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습니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언약궤가 그 어떤 혐오 시설보다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도시에서 도시로 궤를 떠넘기며 방백들이 회의를 거듭하는 그 다급한 모습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손으로는 결코 통제할 수 없는 하나님의 손길을 봅니다.
여기서 중요한 신학적 진실 하나를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로 인해 사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무너지고, 제사장이 죽고, 백성들이 패배했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더할 수도 덜 할 수도 없다는 것, 이것이 출애굽기 15장이 노래하는 진리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출 15:6). 홍해를 가르고 원수를 삼킨 것도 다 "여호와의 손"이라 불립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손이, 인간의 실패와 상관없이 스스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참으로 위로가 되는 진리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흔들릴 때, 교회가 어려움을 겪을 때,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때문에 가려졌다"고 자책합니다. 물론 죄를 회개해야 할 때는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 자체는 우리의 실패에 좌우되는 연약한 것이 아닙니다. 마치 구름이 잔뜩 낀 날에도 태양은 그 자리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의 상황과 무관하게 온전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이 여호와의 손을 어떻게 만나야 할까요? 히브리서 기자는 이 질문에 놀라운 답을 줍니다. 주의 오른손, 그 권능의 자리에 지금 누가 앉아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히 8:1).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곤을 무너뜨리고 아스돗과 가드와 에그론을 흔드셨던 바로 그 손의 자리에 앉아 계십니다.
히브리서 12장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 오른손은 원수를 심판하시는 손일 뿐만 아니라, 자기 백성을 사랑으로 훈육하시는 손이기도 합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히 12:6). 다곤을 무너뜨린 손이, 우리를 향해서는 매를 드시되 사랑으로 드십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를 훈육할 때, 그 훈육이 미움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녀가 위험한 곳으로 걸어갈 때 부모가 손을 붙잡아 세우는 것, 그것이 징계의 본질입니다. 징계가 없다면 그것은 오히려 사생자, 곧 아버지가 없는 자와 같다고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시편 115편은 이 모든 이야기의 결론을 노래합니다.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시 115:4, 7). 다곤이 바로 그런 신이었습니다. 스스로 서지도 못해서 매일 아침 사람이 일으켜 세워줘야 하는 신, 손이 잘리고도 저항 한 번 못하는 신이었습니다.
우리 각자의 삶에도 이런 다곤이 있지 않을까요? 어떤 이에게는 통장의 잔고가, 어떤 이에게는 자녀의 성적이, 어떤 이에게는 사람들의 인정이 그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아침 일으켜 세워야만 겨우 서 있는 것들, 우리가 붙들지 않으면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들 말입니다. 그런 것들 앞에 우리의 신앙과 안정을 걸어둔다면, 우리도 언젠가 그 문지방 앞에서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손은 다릅니다. 사람이 세우지 않아도 스스로 서 계시고, 사람이 무너뜨릴 수도 없는 손입니다. 그리고 그 손이 지금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못 박히셨다가, 다시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그리스도의 손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붙들어야 할 손은 하나뿐입니다. 우리가 흔들어 세우는 손이 아니라, 우리를 흔들리지 않게 붙드시는 손. 그 손을 의지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구약 말씀 묵상 > 사무엘상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무엘상 - 이가봇, 빈 보좌와 참된 영광, 부적이 된 언약궤 (1) | 2026.08.19 |
|---|---|
| 사무엘상 - 말씀이 희귀한 시대, 소음 속에서 들리는 음성 (0) | 2026.08.19 |
| 사무엘상 - 갈고리에 걸린 은혜, 제사를 멸시한 제사장 (0) | 2026.08.06 |
| 사무엘상 - 저울 위에 선 인생, 한나의 찬양 (1) | 2026.08.04 |
| 사무엘상 - 닫힌 태 열린 하늘, 한나 이야기 (0) | 2026.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