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 사무엘상 2장 1~11절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사무엘상 2:6~7)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평생 성실하게 회사를 일구어 마침내 업계에서 손꼽히는 위치에 올랐습니다. 어느 날 후배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선배님, 지금까지 오신 비결이 뭡니까?" 그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다 내가 밤낮없이 뛰어다닌 결과지." 그런데 그날 밤, 그는 잠들지 못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정말 다 내가 한 것인가.' 건강을 주신 이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신 이도, 위기마다 길을 열어주신 이도 자신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마음을 두드렸습니다.
사람은 무언가를 가지면 그것이 자기 것인 줄 압니다. 그리고 그 '있음'을 자신의 힘으로 믿는 순간, 교만이라는 그림자가 슬며시 따라붙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볼 한나의 찬양은 바로 이 '있음'과 '없음'의 이야기입니다.
한나는 아이가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그의 라이벌 브닌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브닌나는 자신의 '있음'을 자랑하며 한나의 '없음'을 끊임없이 조롱했습니다. 마치 시험 성적이 좋은 아이가 그렇지 못한 친구를 은근히 무시하듯, 마치 넓은 집에 사는 사람이 좁은 집에 사는 이웃을 내려다보듯 말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입니다. 브닌나가 아이를 낳은 것이 정말 순전히 그의 능력이었을까요? 만약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았다면 겸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자기 의로 여겼기에, 없는 자를 향해 공격하는 자리까지 나아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는 언제나 반전으로 흘러갑니다. 아무것도 없던 한나가 기도하자, 하나님은 그에게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한나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삼상 2:1)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없음의 자리에 있던 한나가, 이제는 원수를 향해 담대히 노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역전은 한나 개인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무엘서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여기서 시작됩니다.
사무엘서의 마지막 장면에서 다윗은 이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을 다 차지했으며, 군사의 수도 최고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정점에서 다윗은 인구조사를 명령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해 진노하사 다윗을 격동시키셨다고 성경은 말하지만, 역대상은 그 이면에 사탄의 충동이 있었다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 충동이 통할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의 마음속에 이미 그런 욕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업적과 힘을 숫자로 확인하고 과시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요압 장군이 만류했지만 다윗은 듣지 않았습니다. 열 달에 걸친 조사 끝에 나온 숫자는 이스라엘 팔십만, 유다 오십만입니다. 그런데 그 보고를 받는 순간, 다윗은 그제야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깨닫고 무너집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봅니다. 한나에게서는 브닌나의 있음이 밖에서 한나의 없음을 공격했다면, 다윗에게서는 있음과 없음의 싸움이 그의 마음 안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은혜로 세워진 왕이 자기 힘을 자랑하는 순간, 안에서부터 무너진 것입니다.
이것은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도 매일 이 싸움을 치릅니다. 통장 잔고가 늘어날 때, 자녀가 좋은 학교에 들어갔을 때, 사업이 번창할 때, 우리 마음 한구석에서 슬며시 이런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건 내가 이룬 거야.' 원래 우리는 땅의 티끌에 지나지 않는 존재들입니다. 그 처음 자리를 잊는 순간, 은혜 대신 자기 행위를 붙들게 됩니다.
성경은 이런 우리를 저울에 달아보라고 말합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시 62:9) 바벨론의 벨사살 왕이 예루살렘 성전 기명으로 잔치를 벌이던 그 밤을 기억해보십시오. 벽에 나타난 손가락이 쓴 글자, '데겔'.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함이 보였다는 뜻이었습니다. 당대 최강대국의 왕조차 저울 위에서는 무게가 나가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있음이란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쌓아 올려도, 하나님의 저울 앞에서는 입김처럼 가벼운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없음의 자리를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한나의 노래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아니하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삼상 2:4~7)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있음을 의지하지 못하도록 그 있음을 털어버리시고, 없음의 자리에서 오직 한 분만을 붙들게 하십니다. 바로 우리의 영원한 뿔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한나만 노래한 것이 아닙니다. 다윗도 노래했고(삼하 23장), 훗날 마리아도 같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눅 1:51~53) 한나, 다윗, 마리아, 시대도 다르고 신분도 다른 이 세 사람이 놀랍도록 같은 노래를 부릅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들은 각자의 처지에서 그리스도의 영에 감동되어 앞으로 오실 한 분, 즉 십자가에서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노래한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예수님보다 더 철저히 '없음'을 사신 분이 없습니다. 왕으로 오셨으나 마구간에서 나셨고,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나 십자가에서 저주받은 자로 죽으셨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심지어 옷까지 벗겨진 채로 달리셨습니다. 사람의 눈으로는 이런 분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없음의 자리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길을 여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의 있음을 낮추십니다. 건강을, 재물을, 자랑거리를 내려놓게 하십니다. 그 낮아짐이 아플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있음을 자랑하던 자리에서는 결코 부를 수 없던 노래를, 없음의 자리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우리는 부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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