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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속으로

사사와 함께 살고, 사사와 함께 죽고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6. 30.

사사기 2장 6~23절

“은혜 없이 설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사사기의 역사는 한마디로 "
죄–슬픔–간구–구원"의 순환입니다. 그러나 이 구조는 인간의 변화나 회개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구조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끊임없는 인간의 죄악성과 하나님의 은혜의 절대성입니다. 인간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변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인내와 긍휼입니다.

사사가 있을 때만 이스라엘은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사사의 말을 잘 들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본문은 그들이 사사의 말을 청종하지 않았다고 분명히 말합니다(삿 2:17).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이 임한 이유는 사사가 단지 사사가 아니라 ‘
하나님이 세우신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즉, 은혜라는 구조, 메시아라는 그림자, 하나님이 임재하신 장(場) 안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구원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진리를 알게 되면, 인간이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나의 실패와 무능, 그리고 끝없는 죄악성만이 드러납니다. 인간은 자신을 판단하고 규정할 자격이 없는 존재입니다. 선악과 사건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
하나님처럼’ 판단의 주체로 삼으려 했던 시도였습니다. 그 시도는 결국 자신을 ‘벌거벗은 자’, 수치스러운 자로 규정하는 자가 되었고,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는 자가 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
무엇을 했느냐?"고 묻지 않으셨습니다.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질문은 행위보다 환경, 곧 구조를 묻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구조 안에 있을 때만 구원이 가능한 존재입니다. 내 속에서 어떤 선한 행위가 일어나더라도, 그것은 나의 의지나 결단이 아닌, 은혜의 장 안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인간의 행위는 항상 죄로 귀결됩니다. 슬픔도, 간구도 결국 자기 유익을 위한 울음일 뿐입니다. ‘
회개했다’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고통이 사라지길 바라는 자기중심적 외침입니다. 사사기에서 이스라엘은 그렇게 수십 번 반복해서 죄를 짓고, 구원을 받고, 다시 죄를 짓습니다. 그 악순환 속에서 하나님은 그들의 불가능함을 드러내고, 동시에 자신의 은혜와 신실하심을 증명하십니다.

이 구조 안에서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결론은 단 하나입니다.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단 한 걸음도 설 수 없다.”

성막의 지성소에 있는 증거궤는 율법이 담긴 돌판 위에 속죄소라는 금 뚜껑이 덮여 있고, 그 위에 흠 없는 제물의 피가 뿌려집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합니다. 율법은 죄를 고발하고 정죄하지만, 속죄소와 피는 그 죄를 덮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 구조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용서하시는 분으로 남고, 백성은 용서받는 자로 남는 것.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구조이며, 그 둘 사이에 흐르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됨됨이를 판단하려 들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타인을 훈육하고 평가하려 하지 마시고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
하나님 안에 있음’ 외에는 존재 가치를 주장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사사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사사 없이는 단 하루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서 있을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사와 함께 살고, 사사와 함께 죽는” 자입니다. 그 사사는 오직 은혜의 예표, 메시아의 그림자인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사사기는 인간의 무력함과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보여주는 복음의 그림입니다. 사사가 있을 때, 이스라엘은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사사는 단지 정치적 지도자가 아니라, 구속사적 메시아의 예표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의 어떤 행위나 결단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이 마련하신 구조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피를 덧입은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 은혜 안에 있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 안에 머물러야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