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사기 3장 12~30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케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들을 모아가지고 와서 이스라엘을 쳐서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십 팔년을 섬기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의탁하여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칠 때에, 에훗이 장이 한 규빗 되는 좌우에 날선 칼을 만들어 우편 다리 옷 속에 차고"(삿3:12~16)
죄가 사망을 불러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죽이기 위해 하나님이 강성케 하신 가장 강력한 대적은 바로 죄입니다. 그리고 그 죄의 본질은 외부의 환경이나 제도나 구조가 아닌, 우리 안에 있는 본성, 곧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부르짖을 때, 한 사람을 구원자로 세우십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왼손잡이 에훗입니다. 그는 특이한 인물입니다. 당시의 문화에서 왼손잡이는 능력 없는 자, 비주류, 이상한 자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자를 들어 하나님의 구속사를 펼치십니다. 에훗은 양손잡이로도 번역 가능한 표현을 가지고 있지만, 분명 오른손잡이 전사들이 일반적이던 시대에 예외적 존재입니다.
에훗은 ‘은밀한’ 방식으로 칼을 숨기고 에글론을 암살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쟁 방식인가? 겉으로 보기엔 치졸하고 교묘한 방식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방식과 반대되는 방식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방식의 예표입니다.
세상의 왕 에글론은 비둔하고 탐욕스럽고 교만하게 다락방에 홀로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인간 권력과 죄된 본성의 모형입니다. 그런 에글론을 에훗은 왼손으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칼을 빼어 치명타를 가합니다. 이 장면을 우리는 십자가 위의 예수 그리스도로 연결해야 합니다.
에훗이 왼손잡이라는 사실은, 예수님의 방식이 인간의 기대를 완전히 벗어난 방식이라는 것을 상징합니다. 에훗은 겉보기에 왕을 암살하는 비겁한 자객이지만, 하나님의 시선에서는 은밀한 구속의 도구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겉으로 보기엔 나사렛의 목수, 실패한 예언자, 십자가에 죽은 죄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그분이 바로 죄의 본질에 치명타를 가하시는 유일한 구원자입니다.
세상은 성공과 명예와 힘으로 구원을 꿈꾸지만, 하나님은 죽음과 무능과 십자가로 구원을 완성하십니다. 왼손잡이 에훗이 예상치 않은 손으로 칼을 빼어 에글론의 뱃속을 찌르듯, 예수님은 우리 안의 깊은 죄와 교만의 뿌리를 찌르십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 사건의 본질입니다.
왜 하나님은 대적을 키우실까요? 이스라엘은 또 다시 타락하고, 또 다시 짓밟히고, 또 다시 부르짖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반복입니다. 끊임없이 '또'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또'의 반복을 그냥 두시지 않습니다. 그 반복 속에서 상한 심령이 터져 나오기를 기다리십니다.
다윗이 죄의 행위를 넘어 자기 존재 자체가 죄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이스라엘이 단지 고통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무능함과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찾을 때, 에훗이라는 기묘한 자를 통해 구원이 올 때, 우리는 그제야 복음의 본질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제사도 아니고 행위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단 하나, 상한 심령입니다. 상한 심령이란 ‘나는 의롭지 않습니다. 나는 나를 구할 수 없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죽은 자입니다’라는 고백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대적을 남겨두시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예수를 찾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병이 있고, 고통이 있고, 실패가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정죄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로 상한 심령이 되게 하시고,
왼손잡이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짖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사사 에훗은 구속사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그분은 왼손잡이처럼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방식으로, 십자가라는 가장 연약하고 처참한 방식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주님 앞에 이렇게 고백합시다. “주님, 제가 또 넘어졌습니다. 그러나 저의 힘으로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왼손잡이 예수여, 다시 오셔서 저의 대적을 찔러주십시오. 저의 깊은 죄를 도려내시고, 상한 이 심령에 당신의 은혜로 덮어주소서.” 이 고백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예배입니다.
'구약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방주 안에 있는 자들 – 언약 안에 사는 믿음의 증거 (0) | 2025.06.30 |
---|---|
소 모는 막대기 하나 – 삼갈의 삶 (0) | 2025.06.30 |
멈추지 않는 하나님의 시험 – 나를 드러내는 은혜의 장 (0) | 2025.06.30 |
사사와 함께 살고, 사사와 함께 죽고 (0) | 2025.06.30 |
보김에서 우는 자들, 길갈에서의 언약을 잊은 자들 (0) | 2025.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