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사기 3장 1~11절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도 그 안에서 철저히 무너졌다는 사실은 참으로 당혹스럽습니다. 약속의 땅, 축복의 땅에 발을 디뎠음에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잊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깁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 모든 무너짐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셨다고 시작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삿 3:1)
이 고백은 우리 신앙의 시선을 정면으로 돌려 세웁니다. 우리의 실패와 무너짐조차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아담에게 선악과를 놓으셨고, 아브라함에게는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으며, 이스라엘에게는 가나안 족속을 남겨두셨습니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시험의 본질은 단 하나입니다. “너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냐?”
성경은 죄를 단순한 도덕적 실수로 다루지 않습니다. 죄는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마음의 중심’ 이며, 시험은 그 감춰진 마음을 낱낱이 드러내는 하나님의 작업입니다. 그 시험 앞에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내려놓았고, 아담은 하나님을 버렸으며, 이스라엘은 가나안과 결혼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사람들과 혼인을 하고, 그들의 신들을 섬긴 사건은 단지 문화적 타협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욕망을 선택한 ‘나’ 중심의 폭로 였습니다. 그 결과는 참담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게 됩니다.
이러한 반복된 실패를 통해 성경은 끊임없이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너는 결코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는 죄인이다.”
하나님의 시험은 우리가 얼마나 나약하고 무력하며, 은혜 없이는 한 발자국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존재인지를 드러냅니다.
가나안 전쟁은 은혜와 행위의 전쟁입니다. 본문은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언급합니다(삿 3:1). 이 전쟁은 단순한 영토 쟁탈전이 아닙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과 스스로 구원을 이루려는 자들 간의 영적 싸움입니다. 이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내 힘으로 삶을 세우려는 의지, 내가 원하는 대로 하나님을 움직이려는 기도, 내가 바라는 미래를 위해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거래하는 열심이 결국은 나라는 우상을 섬기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뜻이 앞설 때, 우리는 이미 전쟁에서 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사람들과 혼인을 하고, 그들의 신을 섬겼습니다. 하지만 이방 신의 실체는 ‘바알’도 ‘아세라’도 아닌 ‘나’ 였습니다. 나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나의 유익을 위해 신을 조종하려는 그 마음이 바로 죄의 본질입니다.
우상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인간의 욕망을 들어주고, 그 대가로 제물과 헌신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버림받습니다. 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무정한 종교입니까? 반면,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명령하시는 분이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보다 우리의 욕망을 말하는 데에 더 익숙합니다. 그래서 말씀은 들리지 않고, 내 목소리만 커져갑니다.
신명기 8장 3절은 말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우리를 낮추시고, 주리게 하시고, 불편한 광야로 인도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손에 아무것도 없을 때 비로소 하나님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편안함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자로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 목적을 위해 환경을 조작하시고, 시험을 허락하시며, 실패를 드러내시고, 끝내는 사사를 보내셔서 다시 살려내십니다.
그 모든 과정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시험을 계획하신 분도, 우리의 죄를 드러내시는 분도, 징계하시는 분도, 사사를 보내 구원하시는 분도, 모두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손은 비어 있어야 합니다. 시편 28편은 말합니다. “내가 주의 성소를 향하여 손을 들고 부르짖을 때에...” 성도의 손은 말하는 손이 아니라 들리는 손, 비어 있는 손이어야 합니다. 내 행위를 자랑하거나, 나의 손으로 무언가를 얻으려는 손이 아니라,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만을 기다리는 손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들고 있는 '내 공로', '내 열심', '내 경험'은 모두 내려놓고, “주의 이름으로 인해 손을 드는 삶”(시 63:4)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난도, 성공도, 환경도, 관계도… 모두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험의 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나를 진정 사랑하느냐?” “네가 가장 아끼는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느냐?”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그 실패 속에서 “마침내” 죄인됨이 드러났습니다. 그 지점에서야 비로소 구원의 사사, ‘옷니엘’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평안이 임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패턴입니다. 실패 — 폭로 — 회개 — 구원 — 다시 은혜. 우리의 신앙은 실수가 없는 완벽한 경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한 발짝도 설 수 없음을 반복해서 배우는 여정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시험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입술로 “주님만을 사랑합니다” 고백한 그 말이 진실인지, ‘나’라는 우상을 내려놓았는지 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인내하며 이끄시는 분도, 바로 그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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