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사기 2장 6~23절
“은혜 없이 설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사사기의 역사는 한마디로 "죄–슬픔–간구–구원"의 순환입니다. 그러나 이 구조는 인간의 변화나 회개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구조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끊임없는 인간의 죄악성과 하나님의 은혜의 절대성입니다. 인간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변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인내와 긍휼입니다.
사사가 있을 때만 이스라엘은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사사의 말을 잘 들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본문은 그들이 사사의 말을 청종하지 않았다고 분명히 말합니다(삿 2:17).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이 임한 이유는 사사가 단지 사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즉, 은혜라는 구조, 메시아라는 그림자, 하나님이 임재하신 장(場) 안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구원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진리를 알게 되면, 인간이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나의 실패와 무능, 그리고 끝없는 죄악성만이 드러납니다. 인간은 자신을 판단하고 규정할 자격이 없는 존재입니다. 선악과 사건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하나님처럼’ 판단의 주체로 삼으려 했던 시도였습니다. 그 시도는 결국 자신을 ‘벌거벗은 자’, 수치스러운 자로 규정하는 자가 되었고,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는 자가 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무엇을 했느냐?"고 묻지 않으셨습니다.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질문은 행위보다 환경, 곧 구조를 묻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구조 안에 있을 때만 구원이 가능한 존재입니다. 내 속에서 어떤 선한 행위가 일어나더라도, 그것은 나의 의지나 결단이 아닌, 은혜의 장 안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인간의 행위는 항상 죄로 귀결됩니다. 슬픔도, 간구도 결국 자기 유익을 위한 울음일 뿐입니다. ‘회개했다’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고통이 사라지길 바라는 자기중심적 외침입니다. 사사기에서 이스라엘은 그렇게 수십 번 반복해서 죄를 짓고, 구원을 받고, 다시 죄를 짓습니다. 그 악순환 속에서 하나님은 그들의 불가능함을 드러내고, 동시에 자신의 은혜와 신실하심을 증명하십니다.
이 구조 안에서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결론은 단 하나입니다.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단 한 걸음도 설 수 없다.”
성막의 지성소에 있는 증거궤는 율법이 담긴 돌판 위에 속죄소라는 금 뚜껑이 덮여 있고, 그 위에 흠 없는 제물의 피가 뿌려집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합니다. 율법은 죄를 고발하고 정죄하지만, 속죄소와 피는 그 죄를 덮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 구조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용서하시는 분으로 남고, 백성은 용서받는 자로 남는 것.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구조이며, 그 둘 사이에 흐르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됨됨이를 판단하려 들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타인을 훈육하고 평가하려 하지 마시고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음’ 외에는 존재 가치를 주장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사사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사사 없이는 단 하루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서 있을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사와 함께 살고, 사사와 함께 죽는” 자입니다. 그 사사는 오직 은혜의 예표, 메시아의 그림자인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사사기는 인간의 무력함과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보여주는 복음의 그림입니다. 사사가 있을 때, 이스라엘은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사사는 단지 정치적 지도자가 아니라, 구속사적 메시아의 예표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의 어떤 행위나 결단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이 마련하신 구조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피를 덧입은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 은혜 안에 있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 안에 머물러야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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