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더라.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보김이라 하였더라.”(사사기 2:4~5)
보김은, ‘우는 자들의 자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곳에서 통곡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회개의 눈물이기보다는 정죄 앞에서 터진 공포의 울부짖음이었습니다. 그들은 길갈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들었고, 할례로써 육적 자아를 부정했으며, 여리고의 무너짐을 통해 하나님의 전쟁을 목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언약의 순간이 지난 후, 이제 보김에 이르러서야 뒤늦은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길갈은 하나님의 언약이 기념된 장소였습니다. 요단강을 건넌 후 쌓은 열두 돌은 그들의 모든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언약과 주권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기념비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길갈에서의 할례는 인간적 전투력을 무력화시키는 하나님의 선언이었고, '애굽의 수치', 하나님 없이 살아온 인간의 역사 전체를 굴러버리시는 성례의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왜 이스라엘은 그 은혜의 기억을 단 몇 장도 지나지 않아 잊어버린 것일까요?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들을 즉시 다 쫓아내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되고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삿 2:3) 하나님의 이 결정은 단순한 징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의 정체가 스스로 폭로되게 하시려는 주권적 설계입니다. 인간 안에 남아 있는 육적 욕망, 우상에 대한 애착, 세상의 매력에 빠지는 본성이 가나안이라는 현실 속에서 드러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그저 '순종한 자들'로 기억되길 원치 않으십니다. 자기 자신을 올바로 인식하고, 자기의 무능과 부패를 목도함으로써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은혜의 존재가 되길 원하십니다. 그리하여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당신 백성을 단련하시는 훈련장입니다. 거기서 인간의 악함은 더 깊이 드러나고, 은혜 없이는 설 수 없다는 진리가 더 확실히 체화됩니다.
사사기 2장에서 여호와의 사자는 ‘길갈에서 보김까지’ 걸어옵니다. 이것은 단순한 위치 이동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자리(길갈)에서부터 백성들의 배반과 패역의 자리(보김)까지 내려오신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누구입니까? 출애굽기에서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났던 여호와의 사자,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여호와’, 곧 예수 그리스도의 현현입니다.
그분이 인간의 타락과 패역을 보고 진노하시되, 하늘에서 그냥 꾸짖지 않으시고 직접 내려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인도했고, 언약을 결코 어기지 않겠다고 했는데, 너희는 왜 나의 명령을 어겼느냐?” 이것이 여호와의 사자의 심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하나님의 인내와 자비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분이 직접 오셨다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이스라엘은 보김에서 통곡했습니다. 하나님의 책망에 놀랐고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그 울음은 진정한 회개의 열매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감정의 격발이지, 죄에 대한 깨달음과 자기 죽음의 인정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자리를 '보김'(울음의 장소)이라 부르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지만, 결국 다시 우상 숭배와 불순종의 길로 돌아가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도 동일한 자리에 있습니다. 우리는 길갈의 언약을 기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로 여김 받고, 할례를 받은 자들처럼 옛 사람을 벗어버렸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여리고의 무너짐도 경험했고, 여호와의 군대장관을 믿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다시 아이 성으로, 다시 보김으로 갑니다. 그리고 울지만, 돌이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보김에서 울고 있는 우리를 길갈로 부르십니다. 다시 언약의 자리로, 다시 ‘육의 몸을 벗기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부르십니다. 길갈은 인간의 무능력을 철저히 드러내는 곳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이 인간의 약함 속에서 어떻게 완전해지는지를 증언하는 자리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다시 신을 벗고, 다시 할례를 받으며, 다시 만나가 끊기고 하나님의 소산을 먹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보김에서의 울음이 진짜 회개의 눈물이 되려면 길갈의 언약을 다시 붙들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육적 가능성이 철저히 무너졌다는 사실을 믿고, 오직 주의 은혜만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날마다 고백해야 합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 이 전쟁은 나의 것이니라.” (출 14:14) 길갈에서 그 말씀을 들었던 우리,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보김에서는 울되, 헛되이 울지 말아야 합니다. 그 울음이 십자가 앞에서 드리는 진정한 회개와 감사의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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