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예레미야 31:33)
어린 시절, 시골 외갓집에서 여름을 보낸 기억이 있습니다. 외할머니는 매년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면 마당 한켠에 작은 웅덩이를 파두셨습니다. 갑작스러운 소나기가 내릴 때 빗물을 받아두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웅덩이는 늘 비어 있었습니다. 아무리 비가 쏟아져도 이틀이 지나면 바닥이 드러났습니다. 땅이 갈라져 있어 물이 스며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반면 마을 어귀에는 오래전부터 솟아나던 샘이 하나 있었습니다. 가뭄이 들어도 그 샘은 마르는 법이 없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 샘을 "생수"라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말씀이 바로 이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레미야 2장에서 하나님은 탄식하듯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생수가 솟아나는 샘을 두고도 스스로 웅덩이를 파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그것도 밑이 새는 웅덩이를 말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구약과 신약,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구약은 옛 약속이고 신약은 새 약속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이 새 약속의 내용이 이미 구약 안에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을 통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언약을 미리 선포하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본문이 예레미야 31장과 에스겔서입니다.
이 새 언약이 왜 필요했는가를 이해하려면 먼저 옛 언약, 곧 모세 언약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430년 후,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 율법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율법은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나님 앞에 의롭게 설 수 없음을 드러내는 거울이기도 했습니다.
출애굽의 장면을 잠시 상상해 보십시오. 수백 년간 종살이하던 백성이 기적적으로 해방되었습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만나가 하늘에서 내렸으며,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직접 잡고 이끌어 내셨습니다. 예레미야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님은 그들의 "남편"이 되셨습니다. 이보다 더 근접한 사랑과 돌봄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이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받으러 시내산에 오른 지 40일이 지나지 않아, 백성들은 금으로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이것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낸 신이라"고 외치면서, 그 앞에서 절하고 있었습니다. 몸은 애굽에서 나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애굽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이 모습은 롯의 아내를 연상시킵니다. 천사의 손에 이끌려 소돔 성을 탈출하던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고, 그 자리에서 소금 기둥이 되어버렸습니다. 탈출하는 몸과, 그 성을 향해 있는 마음, 이 둘의 분열이 결국 비극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 40일의 반역에서 시작된 균열이 천 년에 걸쳐 깊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사사 시대와 왕정 시대를 거치는 약 천 년의 세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반복한 것은 언약을 어기는 일이었습니다. 이방 나라들조차 자기 신을 바꾸지 않았는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이스라엘은 그 언약을 헌신짝처럼 버렸습니다.
예레미야는 이 역설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어느 나라가 그들의 신들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의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 예레미야 시대에는 성전이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지은 웅장한 건물이 예루살렘에 우뚝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안식일에 그 성전 문 앞에 서서, 예배하러 들어오는 사람들을 가로막으며 선포합니다.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충격적인 선언입니다.
사람들은 성전이라는 건물 안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거짓이라 하셨습니다. 도둑질하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바알에게 분향하면서, 성전 문을 드나드는 것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자위하는 행태를 향해 "도둑의 소굴"이라 선언하신 것입니다.
수백 년 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셨을 때 동일한 분노를 표출하신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 성전에서 상을 뒤엎으며 "도둑의 소굴"이라 하셨고,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일으키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건물을 향한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자신의 몸이 참된 성전임을 선언하신 것이었습니다.
예레미야 13장에는 더욱 절망적인 진단이 나옵니다.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표범의 반점을 표범 스스로 지울 수 없듯, 죄에 물든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변할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여기에서 근본적인 물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대답이 바로 새 언약입니다. 예레미야 31장 31절부터 34절의 말씀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하나님은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그리고 이 언약이 옛 언약과 다른 점을 분명히 하십니다.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돌판에 새긴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외부에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솟아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언하십니다.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에서 복음의 심장이 뛰고 있지 앉습니까?
어느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아들이 오랫동안 방황하다가 집을 나갔고, 수년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밤, 남루한 차림의 아들이 문 앞에 나타났습니다. 아버지는 그를 끌어안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니." 과거를 묻지 않았습니다. 죄를 열거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품 안에 안았습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새 언약은 그런 것입니다. 인간의 반복된 실패와 배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먼저 나서서 죄를 지우시고, 그 기록조차 지워버리시겠다는 선언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먼저 변하면 용서하겠다는 조건부 약속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용서하시고, 그 용서의 힘으로 인간이 변해가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철저하게 타력구원입니다. 내가 쌓은 공로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다가오셔서 나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곳에서 기독교가 마치 자력구원인 것처럼 들립니다. 더 열심히 기도하면, 더 많이 헌금하면, 더 도덕적으로 살면, 마치 그것으로 생명수를 얻을 수 있다는 듯이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 웅덩이를 파는 일입니다. 그것도 밑이 새어 결코 물을 담을 수 없는 웅덩이를 말입니다. 이 새 언약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만찬에서 잔을 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레미야가 예언한 그 새 언약이, 수백 년 후 골고다의 언덕에서 성취된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몸으로는 구약 시대를 살았지만, 영으로는 이미 새 언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그들 안에서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전한 말씀은 단순한 예언이 아니라, 하나님의 오랜 계획인 인간의 실패를 넘어서 마침내 마음을 새롭게 하시겠다는 그 계획의 일부였습니다.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팠던 인류를,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그 생수를 직접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새 언약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그 샘 곁에 머무는 것입니다. 스스로 웅덩이를 파는 수고를 내려놓고, 이미 솟아나고 있는 생수 앞에 잔을 내미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생명이며, 그것이 복음이 약속하는 복인 것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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