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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으로

생각이 감정을 이끈다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6. 11.

보통 사람 같으면 '불행'이 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행복'으로 전환시킬 줄 알았던 사람이 대철학자 소크라테스였습니다. 그는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행복의 기회를 발견할 줄 아는 긍정적 발상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는 말이 많고 성미가 고약했습니다.

사람들이 묻기를
"왜 그런 악처와 같이 사느냐"고 하니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합니다. "마(馬)술에 뛰어나고자 하는 사람은 난폭한 말만 골라서 타지. 난폭한 말을 익숙하게 다루면 딴 말을 탈 때 매우 수월하니까 말이야." 내가 그 여자의 성격을 참고 견디어 낸다면 천하에 다루기 어려운 사람은 없겠지...

또 한번은 부인의 끊임없는 잔소리를 어떻게 견디느냐고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소크라테스는
"물레방아 돌아가는 소리도 귀에 익으면 괴로울 거야 없지" 라고 대답하며 웃더랍니다.

어느 날은 부인이 소크라테스에게 잔소리를 퍼붓다가 머리 위에 물 한 바가지까지 휙 끼얹었습니다. 그래도 소크라테스는 태연히 말했다고 합니다.
"천둥이 친 다음에는 큰비가 내리는 법이지."

보통 사람 같으면 크산티페의 고약한 언동 때문에 같이 감정이 폭발하여 화병이 들고도 남을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재치 있게 긍정적으로 생각함으로써 아예 분노라는 감정을 생기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생각의 힘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 이면에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따라서 생각을 긍정적으로 다스리면 감정은 그에 따라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면, 그 중 하나는 '
불편한 관계'일 것이다. 때로는 가족 안에서, 때로는 직장이나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도무지 맞지 않는 사람들과 마주하며 살아갑니다. 그런 상황은 마음을 지치게 하고, 감정을 흔들어놓으며, 때론 우리의 인격을 시험대에 세웁니다. 그러나 이처럼 피하고 싶은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느냐에 따라, 그 불편함이 인격의 도약대가 될 수도 있고, 감정의 나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이런 상황에서 지혜의 본을 보여준 인물입니다. 그의 아내 크산티페는 언행이 고약하고 잔소리가 끊이지 않는 사람으로 유명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그런 악처와 사느냐”고 물었을 때, 소크라테스는 오히려 그것을 인격 수양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는 말하길, “마술에 뛰어나고자 하는 사람은 난폭한 말만 골라서 탄다”고 했습니다. 난폭한 말을 익숙하게 다루면, 그 어떤 말도 쉽게 다룰 수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그의 대답은 단순한 재치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철학적 태도요, 마음을 다스리는 고도의 훈련이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 나를 다듬고 있는 것이라 여긴다면, 고통이 곧 수련이 됩니다. 소크라테스에게 크산티페는 짐이 아니라 스승이었습니다. 그 스승의 날선 말과 예측 불가능한 행동은, 그를 더욱 유연하고 인내심 깊은 사람으로 만들어갔습니다.

우리는 보통 감정에 휘둘리기 쉽습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태도 하나에도 우리의 기분은 오락가락하며, 마음이 어두워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 감정의 뿌리에는 언제나 ‘
생각’이 있습니다. 상대의 말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우리의 감정은 달라집니다. 상대가 무례하게 행동했을 때, 그것을 모욕으로 생각하면 분노가 솟지만, 그것을 연약함의 표현이라 본다면 연민이 생깁니다. 이것이 '생각이 감정을 이끈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부인의 물세례를 맞고도
“천둥이 친 다음엔 비가 오는 법이지”라며 웃었습니다.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를 냈겠지만, 그는 삶의 불편함조차 하나의 자연스러운 이치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얼마나 깊은 마음의 평안입니까. 그리고 그 평안은, 단순히 성격이 낙천적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철저히 '생각'을 통제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이와 같은 지혜가 필요합니다. 성경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립보서 2:5)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겸손과 온유, 용납과 인내였다. 예수님은 무례함을 참으셨고, 멸시받으시되 맞대응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늘의 뜻, 아버지의 계획을 늘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바르면 감정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서도 낙담하거나 격분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는 기도는, 가장 깊은 상처와 모욕 속에서도 예수님이 얼마나 평안한 생각을 가지고 계셨는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결코 감정의 무감각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감정을 다스리는 능력이었습니다.

우리도 불편한 사람을 만날 때마다, 억울한 일을 겪을 때마다, 마음속에서 소크라테스와 예수님의 지혜가 떠올랐으면 좋겠습니다. 그 상황을 ‘
재앙’으로 생각하지 말고, 나를 단련시키는 ‘기회’로 받아들인다면, 감정은 부드러워지고, 우리는 더 깊은 사람으로 자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

생각은 감정의 뿌리요, 삶의 방향타입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의 생각을 그리스도의 말씀에 붙들어 매고, 어떤 상황에서도 은혜를 놓치지 않는 지혜로운 신앙인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괴롭게 할 때,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또한 나를 다듬는 하나님의 손길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