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종종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을 선한 사람이라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침묵이 지혜의 결과는 아니며, 모든 평온이 성숙의 열매도 아닙니다. 때로는 부당함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선함이 아니라 단순한 무능함일 수 있습니다. 갈등을 피하고 싶어서, 관계가 깨어질까 두려워서, 혹은 상대의 잘못을 바로잡을 자신이 없어서 입을 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침묵은 결국 상대에게 “이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허수아비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처음엔 새들이 허수아비를 무서워합니다. 인간의 모습과 비슷한 형태, 움직일 것 같은 긴장감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무 변화가 없으면 새들은 자연스럽게 깨닫습니다. “저건 움직이지 않아. 위험하지 않아.” 그리고 그 순간부터 허수아비는 더 이상 경계의 대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새들에게 조롱거리이자 먹잇감을 지키지 못하는 무기력의 상징이 되어버립니다.
인간관계도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도, 잘못된 행동을 봤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으며 넘어가기만 한다면, 상대는 그 사람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선함이 오히려 가벼운 존재감을 만들어버립니다. “저 사람은 나에게 늘 친절해. 하지만 나를 막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상대의 마음 한 켠에 자리 잡습니다. 선함은 힘을 잃고, 무능함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 균형을 압니다. 선함과 단호함을 한 손씩 들고 살아갑니다. 단맛과 쓴맛을 상황에 따라 잘 섞어 냅니다. 단맛만 있는 사람은 결국 어린아이들이 찾는 군것질거리처럼, 금세 질리고 쉽게 소비되고 무시됩니다. 반대로 쓴맛만 있는 사람은 사람들을 상하게 하고, 결국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습니다. 진짜 지혜는 ‘부드러움 속의 단단함’을 배치하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종종 착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지만, 관계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착함보다 건강한 힘입니다. 상대가 선을 넘을 때는 단호함으로 멈추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당함 앞에서는 적절한 분노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분노는 파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관계를 바로 세우고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선함은 분명 아름다운 덕목입니다. 그러나 선함이 힘을 잃고 무능으로 변질되는 순간, 그 선함은 더 이상 선함이 아닙니다. 때로는 지킬 것을 지키기 위한 쓴맛도 필요합니다. 그 쓴맛이 살리는 쓴맛이라면, 그 사람의 선함은 더욱 빛납니다.
진짜 선함은 약함과 동일하지 않습니다. 진짜 선함은 필요할 때 단호해질 수 있는 용기를 가집니다. 그리고 그 용기가 있을 때만, 우리의 선함은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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