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사도행전 20:22)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하기 전,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과 성도들을 불러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눈앞의 위험을 알고도 담담히 말했습니다.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간다.”
이 표현은 참 묘합니다. ‘심령에 매였다’는 말은 단순히 마음이 움직였다는 뜻이 아닙니다. 개역개정 성경을 제외한 다른 번역들은 모두 “성령에 매여”라고 번역합니다. 여기의 ‘심령’은 인간의 내면적 의지를 넘어 성령께 사로잡힌 상태, 곧 하나님의 뜻에 의해 붙들린 영혼의 순종을 의미합니다.
성령에 매인다는 것은 무엇인가? 바울은 자신의 의지로 예루살렘을 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에는 고난과 결박이 기다리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주위 사람들도 그를 붙잡으며 말렸습니다. “가지 마십시오, 바울 선생님! 그곳에서 당신은 잡히실 겁니다!”
그러나 그는 단호히 말했습니다. “나는 성령에 매인 사람입니다.” 그의 마음은 이미 하나님께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의 이끄심이 그의 생각보다, 감정보다, 심지어 생명보다 앞섰습니다. 그는 그 길 끝에 십자가의 고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순종하겠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내 뜻이 막힐 때, 그곳에 성령의 매임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서도 바울은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아시아로 복음을 전하고 싶어 했지만,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이해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성령의 뜻을 거슬러 가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는 알았습니다. 성령에 매인다는 것은 내 뜻이 막히는 경험 속에서도 하나님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우리도 종종 같은 길을 걷습니다. 간절히 기도했지만 응답되지 않을 때, 애써 준비했지만 일이 어긋날 때, 하나님께 순종한다고 나섰지만 도리어 길이 막혀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답답합니다. 괴롭습니다. 마치 벽에 가로막힌 듯, 심령이 눌립니다. 바울은 바로 그 상태를 “성령에 매였다”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런 영적 답답함을 경험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2장 50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을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이 말씀에서 ‘답답하다’는 단어는 헬라어로 ‘쉬네코’는, ‘눌리다, 괴로워하다, 병들 듯 스트레스를 받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를 향해 가셨지만, 그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내면의 큰 고통과 싸워야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길이 항상 평안한 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길에는 고통과 스트레스, 심한 답답함이 동반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답답함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바울은 자신이 매인 자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자유인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 속박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사명은 스스로 선택한 길이 아니라 성령께서 이끄신 “불가항력의 순종의 길”이었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으로 향할 때, 그의 마음은 이미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었습니다. 그는 두려움 속에서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내 생명조차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성령에 매인 자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기에 순종합니다. 결과를 보지 않아도, 길이 막혀도, “주께서 허락하신 길이라면 그것이 옳다”는 믿음으로 걸어갑니다.
성령에 매여 답답한가요?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도 바울처럼 ‘매임’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노력해도 열매가 보이지 않으며, 순종했는데 오히려 어려움이 생길 때, 우리는 “하나님, 왜 이 길입니까?”라고 묻게 됩니다.
그러나 그 답답함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고 계신 증거일 수 있습니다. 성령에 매이지 않았다면, 우리는 벌써 그 길에서 벗어나 도망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매였기 때문에,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고통스럽지만, 떠날 수 없습니다. 그곳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다루시는 자리입니다.
욥처럼, 바울처럼, 하나님께 매인 사람은 인내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인내의 끝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위로와 영광이 있습니다. 욥은 고난 끝에 하나님을 눈으로 보았고, 바울은 결박된 몸으로 로마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순종을 통해 구원의 완성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신이 답답함 속에 있다면, 그것이 곧 성령의 매임일 수 있습니다. 당신의 길이 막혔다면, 그 막힌 자리에서 하나님이 새로운 길을 준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령에 매이는 삶은 결코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속박은 영광스러운 속박입니다. 그 길은 좁고 험하지만, 그 끝에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그분의 사랑이 완성됩니다. 바울처럼, 예수님처럼, 우리도 그 길을 걸어야 합니다. 때로는 답답하고 괴로워도,그 매임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단련하시고, 결국 더 깊은 평안과 영광으로 이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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