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어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사도행전 20:22)
바울은 자유로운 복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로마 시민권자였고, 당대 최고의 학문을 배웠으며, 유대 사회에서도 엘리트로 불리던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한 말은 자유인의 말이 아닙니다. 그는 “성령에 매였다”고 말합니다. 스스로 묶인 자가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성령께 붙들린 사람은 자신의 의도와 계획을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 앞에 스스로를 내어맡깁니다.
여기서 말하는 ‘매임’은 단순한 억압이나 강제성이 아닙니다. 바울은 기꺼이 자원하여 매인 자가 된 것입니다. 이 매임은 기도의 자리에서, 깊은 영적 교제의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내면의 순종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강제로 끌려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마음은 오히려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어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성의 진정한 향기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을 향하며 앞으로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불확실한 미래, 고난의 예고, 성도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길을 갑니다. 왜입니까? 성령께서 그를 이끄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에 매인 자는 인간적인 확신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더 크게 반응합니다.
하지만 이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길은 ‘답답함’의 연속이었습니다. 자기 뜻이 꺾이는 고통, 기도했지만 응답되지 않는 침묵, 그리고 현실 속에서 계속되는 장애물들은 그에게 영적 스트레스를 안겨주었습니다. 그는 이미 아시아로 가기를 원했지만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셨기”(행 16:6~7) 때문에 다른 길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이것이 성령에 매인 자의 현실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단했지만, 그 길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힘들고, 외롭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괴로움”, “답답함”, “병든 듯한 스트레스”를 느낍니다. 주님조차도 “내가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눅 12:50)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는 그 뜻의 무게도 함께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에 매인 자의 내적 현실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했다고 해서 그 길이 항상 확신과 평안으로만 가득 찬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진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를 때, 우리는 심한 갈등과 고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충실하려 했기 때문에 오는 고통입니다.
이러한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는가?” “이렇게 어려운 것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일 수 있을까?” 바울의 동역자들이 만류했듯, 주위 사람들은 방향을 바꾸라고 권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우리 자신도 흔들리며 방향을 수정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알았습니다. “지금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나, 후에는 알게 될 것”(요 13:7)이라는 주님의 약속처럼,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선한 인도하심이 있다는 것을. 그는 로마에 가야 한다는 계시를 받았고, 예루살렘 행은 그 여정의 한 과정이었습니다. 지금 당장은 이해되지 않아도, 매임을 받아 따르는 그 길 끝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그는 믿었습니다.
성령에 매이는 삶은 곧 ‘내 뜻을 꺾고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삶’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가장 본질적인 훈련입니다. 기도는 단지 우리의 소원을 아뢰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자리입니다. 응답받는 기도보다 더 귀한 것은, 응답되지 않았음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 믿음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가운데 성령께 매이는 수많은 순간을 경험합니다. 병든 자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으나 나음이 없고, 사역을 시작했으나 열매가 없으며, 주의 뜻이라 믿었지만 오히려 더 큰 고난이 찾아올 때, 우리는 좌절합니다. 그러나 그때야말로 우리가 진짜 신앙의 길을 걷고 있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바울도 그러셨습니다.
욥은 이유 없이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의 삶은 설명되지 않는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욥은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났고, 이전보다 갑절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성령에 매인 자는 반드시 그 매임의 끝에서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결국 로마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놀라운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매임은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더욱 깊이 체험했습니다.
성령에 매인다는 것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치열한 내면의 갈등과, 흔들리는 현실의 고통, 그리고 쉽게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끝까지 붙들려 있는 삶입니다.
그러나 그 길이야말로 영성의 향기가 피어나는 자리입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사랑으로 매인 자,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스스로 묶이기로 결단한 자에게 하나님은 말할 수 없는 위로와 능력을 주십니다. 지금 혹시 그 매임 속에서 답답함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괜찮습니다. 바울도 그랬고, 주님도 그러셨습니다.
우리도 그들과 같이, 성령께 매여 그리스도의 길을 걸어가는 영적 순례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매인 바 되었을지라도, 하나님의 시간이 오면 우리는 다시 자유롭게 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우리가 원하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반드시 영광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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