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게임이든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상대방이 보이지 않을 때입니다. 어릴 적 동네 골목에서 했던 숨바꼭질을 기억하십니까? 눈을 가리고 숫자를 세는 동안 친구들이 뿔뿔이 흩어집니다. 눈을 뜨면 사방이 고요합니다.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두가 어딘가에 있습니다. 담장 뒤에, 나무 그늘 아래, 대문 기둥 옆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침묵 속에서 게임은 더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때때로 이 숨바꼭질을 하는 것과 닮았습니다.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은 17세기 일본을 배경으로 합니다. 당시 일본 막부는 기독교를 뿌리 뽑기 위해 잔혹한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농민 신자들을 코와 입을 꿰어 거꾸로 구덩이에 매달아 천천히 죽게 했습니다. 그런데 더 교활한 것은, 농민들이 아무리 배교를 선언해도 그들을 풀어 주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오직 그들을 전도한 선교사가 직접 발로 성상을 밟아야만 농민들을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신실한 예수회 신부 페레이라는 결국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뒤따라온 제자 로드리고 신부 앞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가 배교한 것은, 이 엄청난 핍박 속에서 하나님이 아무것도 하시지 않았기 때문이야. 나는 필사적으로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셨어." 이 장면은 우리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우리 중 많은 사람이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마음속 어딘가에서 같은 말을 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의로운 사람 중 하나로 꼽히는 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앞으로 가도 그분이 계시지 않고, 뒤로 가도 그분을 찾을 수 없구나" (욥기 23:8). 이 고백 앞에서 우리는 쉽게 "그건 당신 믿음이 약해서예요"라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그럴 자격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욥은 우리 대부분이 평생 경험하지 못할 깊이의 고통을 지나갔으며, 하나님 자신이 그를 가리켜 "내 종"이라고 부르셨던 인물입니다.
작가 필립 얀시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전혀 실망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무신론자일 것이다. 무신론자는 하나님께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침묵 앞에서 가장 깊이 고통받는 사람은 하나님을 가장 진지하게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무관심한 사람은 침묵도 느끼지 못합니다.
21세기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이런 경험은 낯설지 않습니다. 수능을 앞두고 간절히 기도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취업을 위해 수십 번 지원하며 매일 기도했지만 계속 떨어졌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병으로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아무리 울부짖어도 하늘이 닫힌 것처럼 느껴졌을 때, 이런 순간에 우리는 두 가지 선택지 앞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거나, 아니면 하나님이 지금 숨어 계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거나 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무너져 가는 것을 목격하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구원자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께서는 참으로 숨어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 45:15). 이것은 절망의 고백이 아닙니다. 믿음의 고백입니다. 숨어 계신다는 것은, 여전히 계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중세 신학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이런 인상적인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은 먼 곳에 숨어 헛기침을 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는 사람과 같다." 생각해 보십시오. 완전히 숨으려는 사람은 절대 기척을 내지 않습니다. 헛기침을 한다는 것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고난은 때로 그 헛기침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에 하나님을 만났다고 고백합니다. 평탄한 날에는 미처 듣지 못했던 그 음성을,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에야 비로소 들었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닙니다. 역사가 반복적으로 증언하는 패턴입니다. 3·1운동의 불길 속에서 신앙을 지킨 조선의 성도들, 나치의 수용소에서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를 쓴 코리 텐 붐, 처형 직전까지 옥중 서신을 쓴 본회퍼, 이들은 모두 하나님이 가장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이던 곳에서 오히려 가장 생생하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숨바꼭질에서 술래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숨은 사람은 어디에 숨습니까? 찾을 수 없는 곳에 숨지 않습니다. 열심히 찾으면 발견될 수 있는 곳에 숨습니다. 게임의 목적은 영원히 숨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기쁨을 나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그러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찾지 못하도록 숨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발견되시려고 숨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우리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더 깊이 당기시는 방식입니다.
믿음이 자라는 것은 언제나 모든 것이 선명하고 풍족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 막막한 계절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보이는 것에 의존하지 않는 법을 배웁니다. 그것이 믿음의 근육이 단련되는 방식입니다.
어쩌면 지금 당신도 그 침묵 속에 서 있는지 모릅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고, 부르짖어도 하늘이 막힌 것처럼 느껴지는 그 자리,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숨바꼭질에서 술래가 찾고 있는 한, 게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숨어 계시지만, 결코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헛기침을 하고 계십니다.
주님, 가난하게 살아도 좋습니다. 일생을 내 입은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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