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편 말씀 묵상

시편 111편 - 주님의 크신 은혜는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4. 11.

"그의 기적을 사람이 기억하게 하셨으니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도다"(시편 111:4)

은혜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그 기다림의 방식이 저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창문을 열어 놓고 기다리고, 어떤 사람은 커튼을 단단히 내린 채 기다립니다. 창문을 연 사람에게는 바람이 들어오고, 커튼을 내린 사람은 바람이 불었는지조차 모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창문을 활짝 열어 놓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집트를 탈출하던 날 밤을 기억했습니다. 뒤에서는 바로의 군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고, 앞에는 홍해가 막혀 있던 그 아찔한 순간을 잊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바다가 갈라졌습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기억을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간직했습니다. 그래서 광야가 험해도 걸었고, 가나안의 성벽이 높아도 앞장섰습니다. 기적을 기억하는 사람은 기적을 향해 걸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열 명의 정탐꾼들은 달랐습니다. 그들도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 앞에 섰을 때,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이 아니라 거인들만 보였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스스로 내뱉은 말입니다. 메뚜기가 되기로 마음먹은 사람은, 메뚜기처럼 살다가 메뚜기처럼 사라집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공평한 결과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쉽게 오해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나는 가진 것이 없으니까, 아는 것이 부족하니까, 믿음이 약하니까." 이렇게 말하며 작게 기대하는 것을 겸손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만입니다.

왜일까요? 자신의 경험과 계산의 틀 안에 하나님을 가두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척하면서 실제로는
"하나님, 당신은 내 경험의 범위 안에서만 일하십니다"라고 선언하는 셈입니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가장 오만한 태도입니다.

19세기 영국의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으로 떠나기 전, 아무런 재정적 보장도 없이 오직 하나님의 공급을 믿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무모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사업을 하나님의 방식으로 하면, 하나님의 공급이 결코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은 결국 중국내지선교회를 낳았고, 수천 명의 선교사가 중국 땅 깊숙이 들어가는 역사가 되었습니다. 그가 위대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크심을 그 한계보다 더 크게 바라보았을 뿐입니다. 그것이 진짜 겸손입니다.

시편 111편 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기적을 사람이 기억하게 하셨으니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도다." 하나님은 기적을 잊히지 않게 하십니다. 유월절을 제정하신 것도, 성찬을 명하신 것도, 돌을 세워 기념비를 삼게 하신 것도 다 같은 이유입니다. 기억하는 사람만이 간절히 바랄 수 있고, 간절히 바라는 사람만이 믿음으로 행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창문을 열어 놓은 사람에게 옵니다. 창문을 연다는 것은, 내가 계산할 수 없는 일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믿으며 그 방향으로 한 발 내딛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이고, 순종하는 것이고, 때로는 아직 보이지 않는 약속의 땅을 향해 걷는 것입니다.

기적의 은혜는 바로 그때 임합니다. 문을 열어 놓은 자에게, 기억하는 자에게, 간절히 바라며 걸어가는 자에게 임합니다. 오늘, 당신의 창문은 열려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