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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말씀 묵상

시편 115편 - 죽음을 이기는 사랑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4. 14.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시편 115:1)

어느 노인이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습니다. 의사는 가족들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이제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자녀들은 교대로 곁을 지켰고, 친구들도 찾아왔다가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아내만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밤새 손을 잡고, 이름을 불렀습니다. 사흘째 되던 새벽, 의사들도 고개를 저었던 그 사람이 눈을 떴습니다. 나중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어둠 속에서 손 하나가 느껴졌어요. 그 손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의학이 설명하지 못한 그 자리에, 사랑이 있었습니다.

탈무드는 세상에서 강한 것이 열두 가지 있다고 전합니다. 돌은 강합니다. 그러나 쇠가 돌을 깎습니다. 쇠는 강합니다. 그러나 불이 쇠를 녹입니다. 불은 강합니다. 그러나 물이 불을 끕니다. 물은 강합니다. 그러나 구름이 물을 흡수합니다. 구름은 강합니다. 그러나 바람이 구름을 흩어버립니다. 바람은 강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바람을 견딥니다. 그러나 인간도 번민 앞에서는 무너집니다. 번민은 강합니다. 그러나 술 한 잔이 번민을 잠재웁니다. 술은 강합니다. 그러나 잠이 술을 이깁니다. 그리고 잠보다 강한 것은 죽음입니다.

이 목록은 여기서 끝나는 것 같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돌도, 쇠도, 불도, 바람도, 인간의 번민도 모두 무릎을 꿇습니다. 죽음은 모든 것의 마지막 주인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탈무드는 마지막 한 가지를 덧붙입니다. 죽음을 이기는 것은 사랑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감동적인 말이 아닙니다. 시편 115편이 증언하는 신학적 선언입니다. 이 시편은 우상들의 무력함을 고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코가 있어도 냄새를 맡지 못하는 존재들, 그것들은 형태만 있을 뿐,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능력도 없습니다. 사람을 살릴 수 없고,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반면 시편 기자가 의지하는 하나님은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으로 일하시는 분입니다. 히브리어로 인자하심은 '헤세드'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한 친절이 아닙니다. 언약에 기초한 변함없는 사랑, 죽음도 끊을 수 없는 충성된 사랑입니다. 구약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이 한 단어 안에 하나님의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은 바로 이 헤세드에서 흘러나옵니다.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나치 정권에 저항하다가 1945년 플로센뷔르크 감옥에서 처형되었습니다. 처형 전날 밤, 그는 동료 수감자들을 위해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두려움에 떨던 사람들 앞에서 그는 말했습니다.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나에게는 삶의 시작입니다." 그를 지탱한 것은 철학적 용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죽음보다 강한 그 사랑이 그를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했습니다. 사랑은 죽음을 제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죽음을 넘어섭니다.

시편 115편의 첫 절은 이 모든 것을 찬양으로 수렴합니다.
"주님,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돌리지 마시고, 오직 주님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십시오. 그 영광은 다만 주님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에 돌려주십시오." 이 고백은 낮아진 자의 언어입니다. 자신의 능력도, 자신의 공로도, 자신의 믿음의 크기도 내세우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헤세드, 그 사랑의 성실함만을 영광의 근거로 삼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 순서를 거꾸로 살아갑니다. 내가 충분히 믿었기에, 내가 충분히 헌신했기에, 내가 충분히 기도했기에 하나님이 나를 도우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정반대 방향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셨기에, 우리가 살아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먼저였기에, 우리의 믿음도 가능했습니다.

중환자실의 그 노인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던 아내처럼, 하나님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십니다. 세상이 우리를 향해 죽음의 판결을 내릴 때도, 의학이 고개를 저을 때도, 우리 자신이 스스로를 포기하려 할 때도, 그 손은 놓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헤세드입니다. 그것이 시편이 노래하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값없이 받고 오늘 아침을 맞이하는 우리가,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