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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말씀 묵상

시편 118편 - 우리가 사는 이유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4. 19.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넘기지 아니하셨도다."(시편 118:17~18)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시편 46편을 "
나의 시"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로 시작하는 그 시편은, 교황청의 파문 위협 앞에서도 루터가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준 닻이었슥니다. 루터는 그 말씀을 가슴에 품고 독일어 찬송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지었습니다. 말씀이 한 사람의 삶을 통해 노래가 된 것입니다.

한국의 구약학자 고 김정준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시편 118편이 "
나의 시"였습니다. 특히 17절과 18절이 그랬습니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주님께서 하신 일을 선포하겠다. 주님께서는 엄히 징계하셔도, 나를 죽게 버려두지는 않으신다."

그는 폐질환을 앓았습니다. 숨이 가빠오고 몸이 쇠해지는 나날 속에서, 그는 이 두 구절을 종이에 써서 벽에 붙였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 글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밤에 눈을 감기 전에도 그 글을 보며 잠들었습니다. 외울 때까지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이 병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 구절을 소개했습니다. 학자의 언어가 아니라 병자의 언어로, 논문이 아니라 삶으로 전한 말씀이었습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오래전, 한 권사님이 있었습니다. 십여 년을 병상에 누워 지내신 분이었습니다. 스스로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외출은 꿈도 꾸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천장을 바라보며 보내셨습니다. 처음에는 그 삶이 얼마나 갑갑하실까 싶어 위로의 말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위로를 건네야 할 분이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종일 방송을 들으면서 온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게 낙이에요. 바쁘게 돌아다녔다면 이렇게까지 못 했을 거예요."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병상이 기도의 자리가 되고, 고통이 헌신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그분의 삶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멈춰 있었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시편 118편은 원래 감사의 노래입니다. 시편 기자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 돌아온 사람입니다. 대적들이 벌떼처럼 에워쌌고, 무덤의 입구가 코앞이었습니다. 그런데 살았습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
왜 살았는가?" 대답은 단순하고 명료합니다. 선포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이 하신 일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살아남은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살아서 증언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 물음은 건강한 사람에게도, 아픈 사람에게도 똑같이 찾아옵니다. 오르막길을 달리는 사람에게도, 내리막길을 걷는 사람에게도 이 질문은 피해가지 않습니다. 당신은 왜 사십니까? 어떤 이는 가족을 위해 산다고 말합니다. 어떤 이는 꿈을 위해, 어떤 이는 그냥 습관처럼 산다고 말합니다. 그것들이 나쁜 대답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들만으로는 결국 어느 순간, 삶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지는 날이 옵니다. 가족도 지치고, 꿈도 빛을 잃고, 습관은 권태가 됩니다.

시편 기자의 대답은 다릅니다. "
나는 선포하기 위해 산다. 주님이 내게 하신 일을 증언하기 위해 산다." 이 대답은 상황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건강할 때도, 아플 때도, 성공했을 때도, 실패했을 때도, 이 목적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삶의 의미는 대개 거창한 데 있지 않습니다. 김정준이 병실 벽에 써 붙인 두 줄짜리 말씀처럼, 권사님이 누운 채로 드린 조용한 기도처럼, 그것은 아주 작은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서 주님을 향해 얼굴을 돌리는 것입니다.

오늘 당신의 삶도 선포의 자리입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으로, 감사하는 태도로, 포기하지 않는 하루하루로 주님이 하신 일을 증언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이유입니다. 능력은 주님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