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편 말씀 묵상

시편 123편 - 눈을 들어, 동적 평형으로서의 평화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5. 16.

"상전의 손을 살피는 종의 눈처럼, 여주인의 손을 살피는 몸종의 눈처럼,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시편 123:2)

하노이의 소식이 아침을 덮었습니다. 협상 결렬, 두 나라의 대표단이 빈손으로 돌아섰다는 뉴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묵상을 위해 펼쳐두었던 성경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활자들이 떠다녔습니다. 마음은 이미 회담장 어딘가를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한참 만에야 다시 말씀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시편 123편이었습니다. "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첫 절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마음을 붙들었습니다.

어느 오래된 한옥 대가를 상상해보십시오. 이른 아침, 부엌에서 일하는 몸종 하나가 있습니다. 그의 눈은 손을 바라봅니다. 자신의 손이 아니라, 안방 여주인의 손을, 여주인이 손짓 한 번으로 물을 가리키면 물을 떠오고, 문 쪽을 향해 눈짓하면 손님을 맞으러 나갑니다. 말이 필요 없습니다. 눈이 먼저 읽습니다.

시편 기자는 바로 이 장면을 가져옵니다.
"상전의 손을 살피는 종의 눈처럼, 여주인의 손을 살피는 몸종의 눈처럼, 주님의 자비를 사모하며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나이다."(2절) 이것은 비굴함의 자세가 아닙니다. 이것은 집중의 자세입니다. 온 감각이 한 방향을 향하는 것, 세상의 소음이 아무리 커도 그 손 하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것, 시인은 그것을 기도라 부릅니다. 하노이 뉴스가 모든 감각을 점령하던 그 아침, 순례자에게 필요했던 것이 바로 이 자세였습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시편은 솔직합니다.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를 우리가 너무나 받았나이다."(3절) 기도하겠다고 책상 앞에 앉으면, 어디선가 냉소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그래봤자 달라지는 게 뭐가 있냐.' '세상이 원래 그런 거지.' 그 목소리는 때로 바깥에서 오지 않습니다. 내 안에서 먼저 일어납니다.

그러나 구더기 무서워 장을 담그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된장 항아리를 손질하는 할머니는 파리가 날아들어도 뚜껑을 덮고 소금을 더 칩니다. 그 손길이 멈추지 않는 한, 항아리 속에서는 발효가 계속됩니다. 기도도 그렇습니다. 조소가 두렵다고 기도를 포기한다면, 우리 안에서 익어가야 할 것들이 썩어버립니다.

하노이 협상이 결렬되었다고 해서 평화가 죽은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평화란 처음부터 그런 것이 아니었는지 모릅니다. 생물학에 '
동적 평형'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세포는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물질을 받아들이고 내보내면서, 그 부단한 운동 속에서 균형을 유지합니다. 만약 그 교환이 멈추면 세포는 죽습니다. 겉으로는 고요해 보여도, 생명은 쉼 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평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쟁이 없는 상태, 소란이 없는 상태, 그것이 평화의 전부라면, 평화는 언제나 깨지기 직전의 유리잔일 뿐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
묵내뢰', 겉은 고요하되 안에서는 천둥이 치는 것 같은 부단한 교류와 조정의 결과물입니다. 협상 테이블이 한 번 엎어졌다고 해서 그 운동이 끝나지 않습니다. 양쪽이 다시 만나기로 한 것 자체가, 이미 동적 평형의 한 국면입니다.

기도도 그렇습니다. 응답이 보이지 않는다고 멈추면 안 됩니다. 순례자의 기도는 정지를 향한 갈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을 향해 눈을 고정한 채 걷는 부단한 운동입니다.

그날 묵상의 끝에서 시편 기자의 기도가 내 기도가 되었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3절) ''라는 그 한 마디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한 번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기도하는 자도 압니다. 그래서 다시 구합니다. 또 구합니다. 그 반복 속에 순례자의 삶이 있습니다.

협상장이 다시 열릴지, 아니면 더 오랜 겨울을 지나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눈을 들어 하늘을 향하는 일은 오늘도, 내일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평화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