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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말씀 묵상

시편 125편 - 시온의 산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5. 18.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악인의 규가 의인들의 땅에서는 그 권세를  누리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들로 하여금 죄악에 손을 대지 아니하게 함이로다. 여호와여 선한 자들과 마음이 정직한 자들에게 선대하소서.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죄를 범하는 자들과 함께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 지어다."(시편 125:1~5)

어느 해 가을, 나는 예루살렘 외곽 감람산 중턱에 서 있었습니다. 발 아래로 기드론 골짜기가 깊게 패여 있었고, 맞은편에는 시온 산과 모리아 산이 육중하게 솟아 있었습니다. 성전은 오래전에 무너졌고, 그 자리엔 다른 시대가 남긴 돌무더기와 이방의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산은 그대로였습니다. 성벽이 무너져도, 제단이 불타도, 제사장들이 흩어져도, 산만은 조용히 제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오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십 개의 제국이 그 산 아래서 흥했다가 사라졌는데, 산은 단 한 번도 자리를 옮기지 않았습니다. 시편 125편의 순례자는 바로 그 광경을 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순례자입니다. 아마도 바빌론 포로기를 막 지나왔거나, 그 이후 황폐한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목격한 예루살렘은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성은 무너졌고, 성전은 잿더미였으며, 백성은 흩어졌습니다. 느부갓네살의 군대가 쓸고 간 자리는 처참했습니다. 어떤 순례자들은 그 폐허를 보며 고개를 돌렸고, 어떤 이들은 "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라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편 기자는 다른 곳을 바라봅니다. 그는 무너진 성벽이 아니라 성벽 뒤에 버티고 선 산들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산들이 여전히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마치 파수꾼처럼, 아니 아버지가 아이를 안듯이 말입니다. 인간이 쌓은 것은 무너졌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것은 여전히 서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이것이 시편 125편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독특한 신학입니다. 구원의 확신을 심리학이 아닌 지리학으로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이유가 내 믿음의 강도 때문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산이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라는 선언입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의 내면 상태를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그는 밖을 내다봅니다. 산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확신합니다.

1940년, 유럽 전역이 나치즘의 어둠에 잠겨 있을 때, 네덜란드 하를렘의 한 가족이 자신들의 집 벽 뒤에 비밀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코리 텐 붐의 가족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을 숨겨주다가 결국 게슈타포에게 발각되어 강제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아버지는 수용소에서 열흘 만에 숨졌고, 언니 베치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코리는 살아남아 훗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나는 두 종류의 사람을 보았다. 바라쿠크 안의 사람들과 하나님 안의 사람들, 같은 공포 속에서도 그들은 달랐다."

악의 권세는 분명 그녀를 덮쳤습니다. 수용소의 철조망은 실재했고, 굶주림과 죽음도 실재했습니다. 하지만 그 악의 권세는 그녀의 존재를 최종적으로 규정하지 못했습니다. 시편 125편 3절의 언어로 말하자면, 악인의 규는 그녀의 땅을 점령하듯 보였으나, 의인의 손을 죄악 위에 영구히 얹어 놓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악의 세력은 늘 강렬하게 보입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지배할 때도 그랬고, 디글랏 빌레셀이 북이스라엘을 초토화할 때도 그랬으며,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을 불태울 때도 그랬습니다. 로마의 가이사들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했을 때, 그 철권이 영원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지나갔습니다. 시온의 산들만이 남았습니다.

산이 지닌 신학적 언어는 단순히 자연물에 대한 감탄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산은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의 장소입니다. 시내 산은 율법이 주어진 곳이요, 호렙 산은 엘리야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곳이며, 모리아 산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곳이요, 갈보리 언덕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곳입니다. 산은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 속으로 내려오신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두르시리로다"(2절)라는 고백은 단순한 지형 묘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신학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산처럼 둘러싸고 계신다는 것, 그 포위는 적의 침략이 아니라 아버지의 포옹이라는 것, 그리고 그 포옹은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감정을 신앙의 온도계로 삼습니다. 평안하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 같고, 두려우면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다른 방법을 택합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함을 바라봅니다. 산은 내 기분이 좋을 때만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울 때도, 내가 의심할 때도, 내가 잠든 밤에도 산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물론 시편은 순진한 낙관론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시편 기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마음이 정직하여 선을 행하는 자들과,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들입니다(4~5절). 그 굽은 길이란 타협의 길입니다. 악한 권세가 강해 보일 때, "
그냥 적당히 맞춰서 살자"는 유혹에 무릎 꿇는 길입니다.

포로기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면한 실제적 유혹이었습니다. 바빌론의 신을 조금만 섬기면, 느부갓네살의 황금 신상 앞에 잠깐만 무릎 꿇으면, 생존이 더 편해집니다. 그 길로 걸어가는 자들은 결국 죄악과 함께 걸어가게 된다고 시편 기자는 경고합니다.

그러면서도 시편은 마지막을 이 한 마디로 닫습니다. "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샬롬, 단순한 평화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상태, 무너질 것은 무너지고, 영원할 것은 영원히 남는 그 질서, 그 질서 안에 서는 자에게 주어지는 흔들림 없는 안식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흔들리는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나라와 나라가 충돌하고, 경제가 요동치며, 가정이 위기를 맞고, 몸과 마음이 흔들립니다. 악의 권세는 여전히 강하게 보입니다. 때로는 압도적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렵습니다.

그럴 때 시편 125편의 순례자가 했던 일을 해보십시오. 내 감정을 들여다보는 대신, 밖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성벽이 무너져도 산은 서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견고해 보이던 것들이 스러져도 하나님이 세우신 것은 남습니다. 그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르듯, 하나님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두르고 계십니다. 흔들리지 마십시오. 아니, 악한 바람이 불어 잠시 흔들릴지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서 있는 산이 움직이지 않는 한 결코 쓰러지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