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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말씀 묵상

시편 129편 - 끝까지 갈 마음을 먹어야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5. 22.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도다.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밭 가는 자들이 내 등을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사 악인들의 줄을 끊으셨도다. 무릇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여 물러갈지어다."(시편 129:1~5)

무협 소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 것입니다. 이야기는 언제나 비슷한 구조로 흘러갑니다. 깊은 산중 어느 문파에 수십 명의 제자들이 들어옵니다. 스승은 혹독하고, 수련은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처음엔 모두 불꽃같은 눈빛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둘씩 사라집니다. 누구는 관직에 나갈 기회가 생겼다며 떠납니다. 누구는 사형의 시기에 지쳐 등을 돌립니다. 누구는 금지된 마공의 유혹을 이기지 못합니다. 누구는 스승을 의심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문파를 배신합니다. 결국 끝까지 남는 것은 단 한 명,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주인공이 끝까지 남는 이유가 실력이나 체력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종종 가장 늦게 깨닫고, 가장 많이 얻어맞으며, 가장 오래 굴욕을 당합니다. 그를 끝까지 버티게 하는 힘은 다른 데 있습니다. 바로 심력, 마음의 힘입니다. 그는 어느 날 마음속으로 조용히 결단합니다. '
끝까지 간다.' 그 한 가지 다짐이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맘을 먹지 않으면 그만둘 이유는 사방에 널려 있습니다. 맘을 먹었기에 그 모든 이유들이 힘을 잃게 됩니다.

신앙의 여정, 곧 순례의 길도 이와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시편 129편은 이스라엘의 길고 긴 고난의 역사를 회상하는 시입니다.
"그들이 내 어린 때부터 나를 여러 번 괴롭혔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시 129:2). 밭을 갈듯 등을 갈아엎은 원수들의 핍박 속에서도 이스라엘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왜입니까? 주님이 끊어버리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백성 가운데 끝까지 가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생각해보십시오.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열두 명 가운데 열 명은 불가능을 보았습니다. "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다"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달랐습니다. 그는 85세의 나이에 헤브론 산지를 달라고 나섰습니다. 젊었을 때 맘을 먹었고, 40년의 광야가 그 맘을 꺾지 못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생의 마지막 설교에서 선언했습니다.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그것은 즉흥적인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수십 년 전부터 품어온 결단의 재확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떠하셨습니까? 요한복음 13장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여기서 '끝까지'로 번역된 헬라어 '에이스 텔로스'는 단순히 시간적 종말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완전하게, 충분하게, 극한까지라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랑을 십자가 위에서 완성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도망쳤을 때도, 베드로가 부인했을 때도, 군중이 돌아섰을 때도, 그분은 맘을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이미 맘을 먹으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또 어떻습니까? 로마서 9장에서 그는 가슴이 찢어지는 고백을 합니다. "
내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자신이 지옥에 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동족이 구원받는다면 그 길을 가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장이 아닙니다. 그는 실제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그날, 그는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맘 하나로 로마의 감옥과 유대인의 돌팔매와 바다의 풍랑을 통과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신앙은 얼마나 자주 냄비 같습니까? 뜨겁게 달아오르다가 금세 식어버립니다. 부흥집회에서 눈물로 결단하고, 한 주가 지나면 흐릿해집니다. 새벽기도를 시작했다가 날씨가 추워지면 멈춥니다. 누군가를 용서하겠다고 결심했다가, 그 사람 얼굴을 다시 보면 마음이 닫힙니다. 선행을 시작했다가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서운해집니다.

이것이 우리의 솔직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 고백 앞에 주눅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끝까지 하려면, 끝까지 할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매일 새롭게 먹어야 합니다. 순례자는 매일 아침 신발 끈을 다시 묶습니다. 어제의 결심이 오늘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약하고, 악은 집요합니다. 출세의 유혹은 사라지지 않고, 시기심은 틈을 노리며, 불신과 교만은 길가에 항상 엎드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다시, 무릎을 꿇고 마음을 정해야 합니다. "
오늘도 끝까지 사랑하겠습니다. 오늘도 끝까지 용서하겠습니다. 오늘도 끝까지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무협 소설의 주인공은 결국 고수의 경지에 오릅니다. 하늘의 운도 따르고, 뜻밖의 스승도 만나고, 위기 속에서 한 수씩 깨달음을 얻습니다. 고진감래,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는 그 진리는 신앙의 언어로 하면 이렇게 번역됩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 126:5). 주님이 "
그만 쉬어라" 하시기 전까지는, 길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순례는 계속됩니다. 그러니 오늘도 마음을 먹으십시오. 그 마음 하나가, 우리를 끝까지 데려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