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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말씀 묵상

시편 27편 -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0. 3.

시편 27편 1~14절

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2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6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7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8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9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11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생각하셔서 평탄한 길로 나를 인도하소서
12   내 생명을 내 대적에게 맡기지 마소서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일어나 나를 치려 함이니이다
13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
14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대통령이 바뀌는 겨울이었습니다. 시장 골목의 국밥집에서도, 택시 안에서도, 사람들은 같은 말을 했습니다. "
이번에는 좀 살기 편해지겠지." 새 지도자를 향한 기대는 복잡한 이념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소원이었습니다. 월세가 덜 오르고, 가게 손님이 늘고, 아이들 취직 걱정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그 소원이 크고 간절했기에, 사람들은 한 사람의 흠이나 의혹보다 그 사람이 보여준 일의 성과에 마음을 걸었습니다. 소원은 이렇게 사람을 움직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에 앉아 있는 우리에게는 어떤 소원이 있을까요? 왕이신 하나님 앞에 서면서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면 그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반대로 바라는 것이 온통 건강, 자녀 성적, 사업의 형통뿐이라면 그것도 한 번쯤 돌아볼 일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이유가 육신의 문제 해결에만 닿아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해결사에 가까운 분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은 하나님께 어떤 소원을 품었을까요? 시편 27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정확한 때는 알 수 없지만, 내용으로 보아 사울에게 쫓겨 다니던 시절이 배경이었을 것입니다. 창을 피해 굴에서 굴로 옮겨 다니던 사람이 부른 노래입니다.

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이 노래의 첫 줄에서 중요한 것은 승리의 선언보다 두려워할 대상이 있다는 전제입니다. 두려움의 대상이 없는 사람에게 "누구를 두려워하리요"라는 말은 공허합니다. 아무도 나를 위협하지 않는데 "나는 아무도 무섭지 않다"고 노래하는 것은 어색한 일입니다.

학교 앞에서 늘 같은 아이에게 돈을 뺏기던 소년이 있습니다. 어느 날 그 아이의 형이 소년의 손을 잡고 교문 앞에 서 주었습니다. 소년은 그날 비로소 "
이제 나는 무섭지 않아"라고 말합니다. 그 말에 담긴 깊이는 날마다 그 골목을 지나며 떨어 본 아이만 압니다. 한 번도 위협을 당해 본 적 없는 아이가 같은 말을 한다면, 그것은 흉내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시 앞에서 우리는 먼저 물어야 합니다. 나에게는 나를 두렵게 하는 원수가 있는가? 이 질문을 건너뛰면 시편 27편은 그저 아름다운 글이 됩니다. 국어 교과서의 한 단원을 읽는 것과 다를 바 없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이 질문 앞에서 막막해합니다. "
저에게 원수라고 할 사람은 없는데요." 그것은 좋은 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원수는 나와 사이가 틀어진 이웃이나 직장 상사가 아닙니다. 원수는 나의 원수이기 이전에 그리스도의 원수입니다. 원수가 노리는 것은 내 목숨이기 이전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의 이름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주의 이름과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다면, 원수가 굳이 나타날 이유가 없습니다. 나를 건드려서 얻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교회를 다닌 한 집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성실했고 예배에 빠진 적이 없었으며 목사의 설교에도 늘 "
아멘"으로 답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그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평생 한 번도 주님 때문에 곤란해진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직장에서도 이웃 앞에서도 그는 늘 무난한 사람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입에 올려 불편해진 적도, 내 이름이 아닌 주의 이름을 높이려다 손해를 본 적도 없었습니다. 편안했던 것이 아니라, 원수가 상대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