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 복도의 형광등 불빛이 지나치게 밝고, 소독약 냄새는 코를 찌릅니다. 한 여성이 그 복도를 걸으며 손에 든 과일 바구니가 갑자기 너무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오랫동안 투병 중인 친구의 병실 문 앞에 서서, 노크를 하기까지 한참이 걸렸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친구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수척해진 얼굴, 팔에 꽂힌 링거 줄, 그녀는 억지로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많이 좋아진 것 같은데? 얼굴색이 훨씬 나아 보여." 거짓말이었습니다. 친구는 그걸 알았을 것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그녀는 어색함을 메우려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갔습니다. 병원 밖 날씨 이야기, 공통으로 아는 지인의 근황, 별 의미 없는 농담들,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그녀는 창에 이마를 기댄 채 생각했습니다. '나는 오늘 친구에게 무슨 위로가 되었을까.'
아마 우리 대부분은 이런 경험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 가장 힘들 때, 정작 우리는 곁에 없었던 기억, 뒤늦게 달려갔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엉뚱한 말만 늘어놓았던 기억, "다 잘 될 거야"라는 말이 얼마나 공허하게 울리는지 알면서도 그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던 순간들이었습니다.
몸이 아픈 것보다 더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은 고독입니다. 깊은 밤 통증이 찾아올 때, 두려움이 심장을 조여올 때, 그 옆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병보다 더 차갑게 스며듭니다. 오래 병상에 누워 있던 한 노인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아프다는 것보다 서럽다는 게 더 힘들었어. 아프면 약이라도 있지, 서러움엔 약이 없잖아."
그래서 그녀는 오늘 무릎을 꿇습니다. 화려한 언어도, 능숙한 위로의 기술도 없이, 다만 내가 충분히 곁에 있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그대로 안고서 말입니다. 위로한답시고 뱉었던 헛말들, 바빠서 미루다 끝내 가보지 못한 문병, 전화 한 통 드리지 못한 채 지나쳐 버린 날들, 그 면목 없음을 숨기지 않고 기도 안으로 가져옵니다.
'자비를 베푸소서.' 이 오래된 기도문을 읊조리다 눈물을 흘립니다.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줄 능력이 자신에게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오는 눈물입니다. 그 무력함이 부끄럽지만, 동시에 이 눈물만큼은 맑다고 느낍니다. 꾸밈이 없어서, 계산이 없어서, 다만 아파하는 이들을 향한 마음 하나로 흘러내리기 때문입니다.
위로는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말 없이 옆에 앉아 있는 것, 손을 가만히 잡아주는 것, 혹은 이렇게 무릎을 꿇고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일지 모릅니다. "나의 이 작고 가난한 기도가, 지금 이 순간 어디선가 홀로 아픔을 견디고 있는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렇게 기도하고 나면 나 역시 조금은 위로를 받게 됩니다. 결국 위로는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함께 앓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울고 있는 자들과 함께 울라"(로마서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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