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요한복음 10:3~4)
양은 스스로 우리를 나올 수 없습니다. 양은 문이 어디 있는지도 모릅니다. 양은 자신을 구원할 힘도, 방향을 정할 지혜도 없습니다. 그래서 목자가 부릅니다. 그 부르심은 명령이 아니라 호명입니다.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스스로를 문이라 하십니다. 그리고 그 문을 통과하는 사건을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양은 그의 음성을 듣는다.”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문을 통과하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음성을 알아듣는 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모두에게 들립니다. 그러나 모두가 살아나는 것은 아닙니다. 전철역에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 소리는 지나가는 모든 사람의 귀에 동일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그냥 지나가고, 어떤 이는 발걸음을 멈춥니다. 그 순간, 어떤 사람의 내면에서 이런 고백이 터져 나옵니다. “내 인생은 왜 이렇게 공허한가.” “나는 나를 구원할 수 없구나.” “구원자가 필요하다.”
그가 들은 것은 같은 소리였지만, 그에게는 그것이 다른 음성이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일반적인 부르심’과 ‘효과적인 부르심’이라 부릅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습니다. 그러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 효과적인 부르심에 반응하여 양의 우리 밖으로 불려 나온 사람들입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 존재를 완전히 안다는 뜻입니다. 창세기에서 아담은 모든 생물의 이름을 짓습니다. 그는 그들의 본질과 역할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담은 자신의 갈비뼈로 지어진 존재를 ‘하와’라 부릅니다. “나에게서 나온 자.” 하와는 흙으로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담의 일부로 지어졌습니다.
이 장면은 훗날,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 자기 살과 피로 신부인 교회를 지으실 것을 미리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라.” 이것은 상징이 아닙니다. 연합의 선언입니다. 부르심이란 우리를 단순히 불러 세우는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전체를 한 이름 안에 묶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자는 반드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뿐입니다.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한 번 스치고 지나간 감정이 아닙니다. 지금도 우리 위에 쏟아지고 있는 지속적이고 역동적인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의무가 되면 죽습니다. 사랑은 억지가 되는 순간, 노동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한 채 사랑의 행위를 흉내 내면 그것은 반드시 교만과 정죄로 변질됩니다. 사랑은 이해에서 시작되고, 이해는 계속 확인될 때 살아 있는 것입니다.
욥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욕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내는 평안할 때는 함께 예배했지만, 고난 앞에서는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차이는 분명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했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이용했는가, 부르심을 입은 자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배웁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징벌이 아니라 양육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예수님은 은혜의 문이십니다. 그러나 그 문은 좁습니다. 왜냐하면 그 문을 통과하는 삶은 자기 부인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부르심을 입은 성도는 이미 구원받았지만, 그 이후의 삶에서는 힘쓰고 애써야 할 싸움이 있습니다. 그 싸움은 세상을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자기를 죽이기 위한 싸움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편하게 만들어 주는 마술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빚어내는 능력인 것입니다.
부르심은 특권이 아닙니다. 부르심은 사랑의 책임입니다. 우리는 불려 나왔습니다. 은혜로, 전적으로, 이제 우리는 그 음성을 따라 하루하루 목자의 뒤를 따라 걷습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양의 모습으로 닮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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