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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말씀 묵상

에베소서 -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15.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에베소서 1:4)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분명힓니다.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종종 구원의 목적을 오해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얼마나 행복한가”, “얼마나 잘 되는가”를 기준으로 하나님을 평가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단 한 번도 우리의 인생 목표를 ‘행복’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성도의 목적은 거룩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우리를 하나님 나라에 적당히 들여보내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동행할 수 있는 존재, 곧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빚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단순히 죄 사함에서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구원은 언제나 거룩을 향한 여정을 포함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 밤에 서서, 신을 신고, 지팡이를 짚고 급히 음식을 먹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죽음에서 건짐을 받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들 앞에는 광야라는 시간이 있었고, 약속의 땅이라는 목적지가 있었습니다. 구원받은 자는 언제나 길 위에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홍해를 건넌 뒤, 광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구원의 감격에는 머물러 있으면서도, 거룩을 만들어 가는 삶에는 무관심합니다. 특히
‘은혜’를 강조하는 곳에서 이런 현상이 자주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은혜를 깊이 안 결과가 아니라, 은혜를 오해한 결과입니다.

성경은 분명 말합니다.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과 뜻이나 마음이 서로 맞아 사이가 좋게 하시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곧 나의 뜻이 되는 삶을 의미합니다. 내 욕망을 이루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살아내는 삶입니다. 이것이 순종이며, 이것이 거룩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곧 질문에 부딪힙니다.
“구원이 전적으로 은혜라면, 왜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야 합니까?” “왜 죄와 싸워야 하고, 왜 피 흘리기까지 애써야 하는 것입니까?” 성경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은혜와 순종은 대립하지 않습니다. 은혜는 순종을 낳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로 구원받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는 이미 도말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습니다. 우리는 안과 밖이 모두 ‘거룩하고 흠 없는 자’로 여김을 받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된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은혜는 사람을 무너지게 하지 않고, 일어서게 합니다. 사랑받았음을 아는 사람은 사랑을 저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 우리는 복종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립니다. 우리는 구원받았기 때문에 복종하게 된 것입니다.

거룩을 향한 싸움은 하나님께 보답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은혜는 더 이상 은혜가 아닙니다. 갚을 수 있다면 그것은 선물이 아니라 빚입니다.

우리가 거룩을 추구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것이 우리를 위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억지로 고행하게 만들기 위해 거룩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경건을 위해 애쓰는 삶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길을 잠시라도 걸어본 사람은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을 때 찾아오는 깊은 평안과 기쁨은, 세상이 주는 어떤 성취와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것은 영혼을 살리는 기쁨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거룩할 수 있는 능력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에 있습니다. 실패한다고 해서 우리의 신분이 바뀌지 않습니다. 죄와의 싸움에서 넘어질 수는 있지만, 정죄는 이미 끝났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만이 다시 일어나 싸울 수 있습니다. 실패 속에서도 은혜를 더 깊이 깨닫는 사람은 점점 자라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의 수단을 주셨습니다. 말씀, 기도, 성례, 이것들은 은혜를 벌어오는 도구가 아니라, 이미 부어진 은혜를 경험하게 하는 통로인 것입니다. 예배를 가볍게 여기는 신앙은 은혜를 갈망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말씀을 멀리하고, 기도를 놓고, 성례를 형식으로 치부하면서 은혜를 말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하나님은 이 통로들을 통해 우리를 양육하십니다. 결국 우리의 구원은 시작부터 끝까지 은혜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는 반드시 우리를 거룩의 자리로 이끕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분리되지 않는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때 우리는 가장 깊이 하나님을 즐기게 됩니다. 거룩은 짐이 아닙니다. 거룩은 은혜가 이끄는 가장 아름다운 열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그렇게 빚고 계십니다.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