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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말씀 묵상

에베소서 -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신 성령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18.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에베소서 1:11~14)

어떤 사람이 어린 시절, 할아버지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편지를 받은 것이 아니라, 편지를 받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두꺼운 봉투 하나를 그의 손에 쥐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 안에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 꼭 알아야 할 것들을 적어 두었다. 아직 열지 마라." 봉투에는 할아버지의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습니다.

그는 그 봉투를 서랍 깊숙이 넣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가끔씩, 삶이 막막하게 느껴지는 날이면 그 봉투를 꺼내 만져 보았습니다. 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거기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상하게 마음이 단단해졌습니다. 할아버지의 도장, 그 붉은 인침이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진짜다. 이것은 네 것이다. 아무도 이것을 빼앗을 수 없다."

에베소서 1장 13절과 14절을 처음 읽었을 때, 그는 그 봉투를 떠올렸습니다. 바울은 당신이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는 순간, 당신은 성령의 인침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인침이 당신의 기업, 즉 하나님이 당신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의 보증이 된다고 합니다.

인침(seal)이라는 단어를 그냥 흘려 듣기 쉽습니다. 그러나 고대 세계에서 인은 단순한 도장이 아니었습니다. 왕의 반지가 밀랍 위에 눌린 그 자국은 세 가지를 동시에 선언했습니다. 이것은 진짜라는 것, 이것은 왕의 것이라는 것, 그리고 이것은 건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진정성, 소유권, 보호, 그 세 가지가 하나의 인 안에 담겨 있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성령의 인침도 정확히 그것입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은 어떤 감정적 고양이나 극적인 체험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의 말씀,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것이 사실임을 믿게 된 그 순간, 하나님께서 당신 위에 당신의 도장을 찍으신 것입니다.
"이 사람은 진짜다. 이 사람은 내 것이다. 이 사람은 안전하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일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요.

바울은 11절에서 조금 어색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을 합니다.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하나님께서 먼저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손을 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분이 원하셨기 때문에 이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들에게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모든 것이 예정되어 있다면, 우리는 그저 연극의 배우에 불과한 것입니까. 그러나 빌립보서 2장 12절과 13절을 나란히 읽어 보십시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게 하고 행하게 하시나니"라는 말이 단 한 호흡 안에 공존합니다.

마치 이런 것입니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습니다. 세 살짜리 아이가 옆에 서서
"나도 도와줄게요" 하며 당근 하나를 집어 듭니다. 어머니는 아이가 칼에 다치지 않도록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썹니다. 그 당근을 자른 것은 아이입니까, 어머니입니까. 둘 다입니다.

그러나 그 요리가 완성되는 것은 어머니의 솜씨 때문이며, 아이는 그 과정에서 요리하는 기쁨을 진짜로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방식이 꼭 그와 같습니다. 우리의 소원과 열심을 방편으로 삼으시되, 결국 이루시는 것은 그분이십니다.

그 이루심이 어떻게 우리에게 오는지를 13절이 정확하게 보여 줍니다.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사도행전 16장에 루디아라는 여인이 등장합니다. 두아디라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였던 그녀는 어느 안식일, 빌립보 강가에서 열린 작은 기도 모임에 나갔습니다. 특별한 계시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했고, 그녀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성경은 한 문장을 덧붙입니다.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루디아는 듣고 있었지만, 그 듣는 행위 안에서 하나님이 일하고 계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비밀이 알려지는 방식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1장 8절에서 하나님이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알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영리함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시지 않으면 아무도 볼 수 없고, 하나님이 여시면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루디아는 그날 유럽 최초의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강가의 작은 기도 모임이 유럽 교회의 시작이었습니다. 거창한 신학 강좌도, 화려한 무대도 아니었습니다. 말씀이 선포되었고, 하나님이 마음을 여셨으며, 한 사람이 믿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이제 14절의 핵심 단어로 돌아옵니다. 보증, 헬라어로
'아라본(arrabon)'. 이 단어는 사실 신학 용어가 아니었습니다. 시장에서 쓰이는 상거래 용어였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계약금과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구별이 있습니다. 계약금은 담보와 다릅니다. 담보는 나중에 돌려받을 다른 물건을 미리 맡기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집을 살 때 금반지를 담보로 맡기는 경우, 집과 금반지는 서로 다른 종류입니다. 그러나 계약금은 다릅니다. 사과 천 개를 살 계약을 하면서 계약금으로 사과 열 개를 먼저 주는 것, 그것이 아라본입니다. 나중에 받을 것과 지금 받는 것이 동일한 종류여야 합니다.

바울이 로마서 8장 23절에서 성령을
"처음 익은 열매"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스라엘 농부들은 추수가 끝나기 전에 먼저 익은 이삭 몇 개를 잘라 빵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그 빵의 맛이 전체 수확의 맛이었습니다. 풍성함이 예고된 것이 아니라, 풍성함이 미리 맛보여진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신다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천국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누릴 그 기쁨, 그 평강, 그 충만함의 계약금이 지금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그 종류의 것을 경험하기 시작한 사람들입니다.

일본의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는 어느 날 영주로부터 닭 한 마리를 그려 달라는 의뢰를 받았습니다. 영주는 며칠 후 완성작을 기대하며 화실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호쿠사이는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붓을 들었습니다. 어리둥절한 영주 앞에서 그는 단숨에, 그러나 완벽한 닭 한 마리를 그려 냈습니다. 그리고 방 한쪽을 가리켰습니다. 그곳에는 지난 삼 년 동안 그가 그린 닭 그림이 산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그 단숨의 선 하나에 삼 년이 들어 있었습니다.

성령의 인침을 받은 삶이란 그러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보증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 결말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말을 향해 걸어가는 오늘의 삶은 치열합니다. 디모데후서 2장 19절은 말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다 불의에서 떠나라." 소유권이 확인된 자는 그 소유권자의 성품을 닮아 가야 합니다. 천국에서는 모든 흠과 점이 사라진 자들만이 그 영광을 완전히 누립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이미 그 맛을 연습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불의를 보면 불편해지고, 세상의 소욕이 예전처럼 달콤하지 않으며, 이유 없이 맑은 기쁨이 찾아오는 순간들, 그것이 천국의 계약금입니다. 그것이 성령이 우리 안에 살아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바울이 3절부터 14절까지 숨 한 번 쉬지 않고 이어 가는 그 긴 문장의 끝에 오는 말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까?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경륜이 시작된 목적도,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재통일된 목적도, 우리가 인침을 받은 목적도 모두 하나로 수렴됩니다. 찬미와 영광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3절에서 그 목적이 완성됩니다.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태초부터 흘러온 이 한 문장,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는 그 언약이 마침내 완전히 성취되는 날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그 날의 맛을 오늘 이미 조금씩 받아 들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할아버지의 봉투를 결국 열던 날, 그는 성인이 되고 한참 후였습니다. 안에는 긴 편지와 함께 작은 씨앗 봉지 하나가 들어 있었습니다.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이 씨앗을 심어라. 꽃이 피면 그것이 나의 안부다."

그는 그 씨앗을 심었습니다. 봄이 되자 꽃이 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그 꽃이 피는 순간, 그는 할아버지가 여전히 어딘가에서 나를 알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신다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아버지가 보이는 방식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직 도달하지 않은 나라가 지금 여기서 이미 실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 봉투를 받았습니까. 그 인침이 당신 위에 찍혔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씨앗을 심을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