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에베소서 1:3)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주 사용하는 말 중에 하나가 ‘찬양’입니다. 그러나 정작 찬양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왜 찬양해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얼마나 있을까요? 에베소서를 펼쳐보면, 바울은 편지 인사를 마치자마자 숨을 고를 틈도 없이 곧바로 외칩니다. “찬송하리로다!”
마치 설명을 미처 시작하기도 전에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온 감격 같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이 감격은 단순한 감정의 폭발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그리고 그분이 우리에게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분명하게 ‘알았기’ 때문에 찬송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찬양은 감정의 파도에 올라타 노래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데서’ 흘러나오는 반응입니다.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 6:3) 지식 없는 열광이 많아도 그것은 찬양이 아니라 종교적 음악이 될 뿐입니다.
하나님을 알 때 비로소 찬양이 터져 나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모르면 자신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어떤 신이든 붙잡습니다. 나에게 도움만 준다면 그 존재가 누구든 상관없습니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도 이런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보다 ‘내가 어떤 체험을 했는지’에만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을 조금만 배워도 자신의 기존 감정적 신앙이 흔들려 “신학이 내 신앙을 망쳤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망가진 것은 신학이 아니라 그 사람의 ‘기초 없는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신앙은 어두운 방에 촛불 하나 켠 것처럼 따뜻해 보이지만 오래가지 못합니다.
바울의 찬송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바울이 말하는 찬양의 이유는 에베소서 1장 4절부터 14절까지 이어집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 말씀 전체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삼위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세상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하나님은 우리를 한 명 한 명 기억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지, 어떤 죄를 지을지, 얼마나 연약할지 아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 안에서 거룩하고 흠 없게 하려고 택하셨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우리를 피 흘려 구속하셨습니다. 우리의 죄과를 해결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기꺼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피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우리를 완전히 새 사람으로 만드는 ‘구속의 값’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들,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구원의 보증이 되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가 받은 구원이 결코 사라지지 않음을 보증하십니다. 우리 안의 믿음, 회개, 깨달음, 말씀에 대한 감동은 성령께서 주시는 변하지 않는 인치심입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이렇게 영원 속에서부터 한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계획하시고 이루셨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바울이 그냥 조용히 설명만 하고 있을 수 있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외칩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의 정체성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종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자신의 직업으로 대답합니다. 의사입니다, 변호사입니다, 교수입니다. 그러나 그 직업은 50년 후에 여전히 우리의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딸입니다.” 이 신분은 5년, 50년이 아니라 영원히 변하지 않는 정체성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자랑하기보다 세상적인 성취를 더 자랑합니다. 우리 아이가 어느 대학에 갔는지는 말하지만 “우리 아이는 참 복음을 아는 진짜 성도입니다”라고 자랑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우리는 종종 영원한 것을 뒤로 미루고 지나가는 것을 붙잡습니다. 바울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받은 은혜, 자기가 선택된 신분, 자기가 하나님의 가족이 된 사실을 그 어떤 세상의 영광보다 더 크게 보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첫 마디는 설명 이전에, 감정 이전에 나오는 단 하나의 고백입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의 찬양은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고, 그분이 나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알고, 내가 어떤 신분을 받았는지 알 때 저절로 터져 나오는 반응입니다. 마치 그랜드 캐니언 앞에서 억지로 감탄하려 애쓸 필요가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찬양이 자연스러운 호흡처럼 흘러나옵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신분, 우리에게 부어진 은혜, 우리 안에 인치신 성령을 생각하며 바울처럼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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