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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에 속한 사람들

영에 속한 사람 - 믿음의 생활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9. 27.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브리서 11:1)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종종
‘느낌’에 의존하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예배 시간에 마음이 뜨겁게 벅차오를 때, 기도 중에 깊은 감동이 밀려올 때, 우리는 마치 하나님을 더 잘 믿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러나 이런 감정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기쁨이 사라지고 마음이 차가워질 때, 우리의 신앙도 함께 식어버린다면 그것은 ‘믿음의 생활’이라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감정의 뿌리에 내리는 것이 아니라, 믿는 분이신 하나님 자신께 닻을 내리는 것입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는 바다에서도 닻이 깊이 내려가 있으면 배가 쉽게 흔들리지 않듯이, 우리의 영혼도 하나님께 믿음의 닻을 내릴 때 흔들림 없이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미워하신다고 느껴질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나를 맡기는 것이 참된 믿음의 삶이다." 이것이 믿음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내가 느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확고한 신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생활은 의지의 생활입니다. 믿음의 길을 걷는 사람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로 하나님을 붙듭니다. 내 마음이 뜨겁지 않아도, 하나님께 순종하고 싶은 감정이 없더라도,
“나는 하나님께 순종하겠습니다”라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영적 성숙의 길입니다.

반대로, 감정에만 의존하는 신앙은 늘 기복이 심합니다. 무언가 자극을 받으면 하나님을 뜨겁게 섬기지만, 그 감정이 식어버리면 곧 하나님을 등지고 자신의 욕망을 따릅니다. 이는
‘혼적 신앙’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혼적 신앙인은 결국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두고 살아갑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이유도 결국은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 신앙인은 다릅니다. 그는 자기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동행과 협력을 선택합니다. 외부의 자극이 없어도, 상황이 힘들어도, 묵묵히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따릅니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를 슬픔과 고난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 안에는 여전히 자기 자신을 위하는 욕망이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뜻보다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더 강하게 바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혼적인 자아를 깨뜨리시고, 감정에 매달린 신앙을 벗어나 참된 믿음의 생활로 이끌기 위해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이것은 마치 정금이 풀무 불에서 단련되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믿음이 정화되고, 혼적인 신앙이 껍질처럼 벗겨져 나갈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참된 신앙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은 감정의 파도에 흔들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생활은 그 위를 뛰어넘어,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결정하는 삶입니다. 내 감정이 메마를 때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까? 기도의 응답이 더디게 올 때도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결단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길을 고통을 통해 이끌어 가실 때도, 여전히 그분을 의지하겠습니까? 믿음의 생활은 이런 질문 앞에서
“예, 주님. 저는 감정이 아니라 의지로 주님을 붙듭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의 여정입니다. 느낌이 아니라 믿음, 자극이 아니라 의지, 자기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길을 걷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감정의 기복을 넘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생활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흔들리는 감정이 아니라 변치 않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닻을 내리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영적 성도의 삶입니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박국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