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신의 본질은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육신에 대해 단호한 선언을 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 8:6~8).
이 말씀은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비극을 드러냅니다. 하나님 없는 육신은 그 자체로 불순종이며, 하나님과의 불화이며, 죽음의 냄새를 품고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그 육신을 아름답게 치장하고, 훈련하고, 겸손하게 보이려 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육신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굴복할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롬 8:7).
우리가 스스로를 신뢰하고 의지할 때, 그 믿음의 중심에는 바로 이 육신의 자아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겸손을 입었을지라도, 시험이 오면 그 겉옷은 벗겨지고, 자기의 의와 교만이 속속들이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고난 속에 두시는가? 고난은 단지 삶의 불행이 아닙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외과 수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육체를 신뢰할 때, 우리를 고난의 길로 통과하도록 하십니다.” 이는 단지 징벌이 아니라, 우리의 자아, 곧 육신의 교만을 깨뜨리시려는 사랑의 손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자랑하는 자를 낮추십니다. 그가 드러나지 못하게 하시고, 드러났다면 시험에 부치십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고난을 통과하지 않은 자는 겉으로는 신실해 보여도, 실제로는 자신을 위해 살고,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을 자랑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육신의 의로 인해 넘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하나님의 배려요, 사랑의 연단입니다. 고통은 우리가 영으로 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정화의 불입니다. 고난 속에서 우리는 육신의 무능과 무익함을 경험하며, 더 이상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성령을 의지하는 자로 바뀌어 갑니다.
십자가는 육신을 죽이는 도구이지만, 영을 살리는 길이기도 합니다. “기독교인이 십자가를 통하여 육신의 죄에서 해방 받듯이, 같은 십자가로 육신의 의로부터 해방 받아야 합니다.” 이 얼마나 깊은 진리입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죄의 용서를 위해 십자가를 바라보지만, 육신의 자랑과 자기의 의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십자가를 바라보는 이는 드뭅니다. 그러나 복음은 이 둘을 동시에 요구합니다. 육신의 ‘죄’는 정죄받아야 할 대상이요, 육신의 ‘의’는 죽어야 할 대상입니다. 둘 다 십자가로 가야 합니다.
십자가는 저주의 나무입니다. 우리가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그 육신은 더 이상 어떤 주장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감정, 욕망, 생각, 선함, 심지어 예배와 봉사까지도 육신에서 나왔다면 모두 저주에 속합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육신의 행위도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은 오직 성령 안에서 행한 것, 곧 영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 순간 우리의 ‘영’을 강화시키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말씀으로, 기도로, 순종으로, 고난을 기쁨으로 받으며, 날마다 영의 사람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성도는 자신에게 찾아오는 시험과 고난을 운명적 슬픔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히 영에 속한 사람으로 빚으시려는 초청입니다.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라"(롬 8:4)는 말씀은 단순한 조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도의 정체성과 사명의 본질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육신에 속한 자가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사는 자, 곧 하나님의 생명을 따라 사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겪는 모든 고난, 내면의 갈등, 육신의 좌절 속에서도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통하여 영의 사람을 세우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통과한 자만이 참된 생명을 삽니다. 육신의 경건, 육신의 예배, 육신의 신앙 활동으로는 결코 하나님께 이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시 십자가로 돌아가야 합니다. 단지 죄 사함의 은혜를 입기 위해서가 아니라, 육신의 의를 내려놓고, 온전히 영으로 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령께 묻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 우리는 ‘영에 속한 사람’으로서 자라가며,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룰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육신의 소욕이 모두 꺾인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만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이 고백은 실패한 자의 말이 아니라, 날마다 십자가 앞에 육신을 내려놓는 진정한 성령의 사람의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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