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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에 속한 사람들

영에 속한 사람, 육에 속한 사람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1. 8.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이지만, 성경은 우리를 한 부류로 묶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두 가지 형태의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영에 속한 사람, 또 하나는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이 구분은 단순히 신앙의 강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본질이 어디에 속해 있는가, 즉 우리의 중심이 무엇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속하다”는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어디에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디에 종속되어 있는가’를 뜻합니다. 우리가 영에 속했다면 우리의 생각과 마음, 욕망과 행동이 모두 하나님의 영의 지배 아래 있는 것이고, 육에 속했다면 우리의 판단과 감정, 욕심이 여전히 자기 자신과 세상의 원리에 지배받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영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믿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봉사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런 행위 자체가 영적임을 보증하지 않는다고 경고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하나,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느니라."(롬 8:5)

겉으로는 신앙적인 일을 하고 있어도, 그 마음이 여전히 자기 중심적이라면, 그는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겉으로는 경건하지만, 속은 위선과 다툼과 교만으로 가득 찬 사람은 결코 영의 사람이 아닙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시대의 종교적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학식이 높고 덕망이 있는 사람이었으며,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성전에서 영이신 하나님을 실제로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의 실체를 깨닫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사 6:5)

그는 자신이 ‘
입술이 부정하다’는 고백을 합니다. 즉, 거짓과 위선을 입에 담았던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 앞에 서면, 인간의 경건과 종교심은 모두 무너집니다. 진짜 영적인 만남은 우리를 낮추고, 벌거벗기고, 자신의 죄와 위선을 철저히 보게 만듭니다. 이것이 영에 속한 삶의 시작점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종교적으로 열심히 살지만, 영이신 그리스도를 실제로 만나지 못한 성도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예배와 봉사, 심지어 은사까지 받았지만 그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실제로 경험한 결과가 아니라 자기 확신과 종교적 습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그랬습니다. 그들은 은사가 풍성했고, 신령한 체험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다툼과 교만이 가득했습니다. “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하며 자신을 구분짓고 은사를 자랑하며 서로를 판단했습니다. 영적 능력과 영적인 사람 됨은 전혀 별개입니다. 능력이 곧 영성의 증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영으로 만난 사람만이 참으로 영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영이신 그리스도를 만난다는 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기도의 양으로, 금식의 길이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집니다. 그분이 자신을 드러내실 때, 우리의 눈이 열리고 귀가 열려 말씀의 실재를 듣게 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곧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그러므로 영에 속한 사람은 결국 ‘말씀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으로 만나, 그분의 말씀과 뜻을 듣고 그 말씀에 삶 전체를 맡긴 사람입니다. 이 만남이 있을 때, 사람의 가치관은 송두리째 바뀝니다. 세상의 성공보다 순종이, 자기의 영광보다 그리스도의 영광이 더 소중해집니다. 그때부터 그의 삶은 희생과 사랑의 향기로 변해갑니다.

영에 속한 삶은 단순히 조용한 기도나 깊은 묵상이 아닙니다. 그 삶에는 분명한 열매와 영향력이 나타납니다. 자신이 변화될 뿐 아니라, 그의 삶을 통해 다른 사람들도 변화됩니다. 그것은 큰 소리로 외치는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오는 내면의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세상적인 힘과 달리 자기를 높이는 대신, 자기를 비우게 합니다. 그 비움 속에서 성령은 역사하시고, 그 삶은 고귀한 향기를 품게 됩니다.

성경 속 인물들은 모두 이 만남의 결과로 새로운 길을 걸었습니다. 이사야는 “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외쳤고,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름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영적 만남에는 반드시 말씀이 함께 주어집니다. 그 말씀은 우리의 존재를 흔들고,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능력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말씀과의 만남은 곧 소명(The Call)이며, 그 부르심 앞에 순종할 때 비로소 우리는 영에 속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날에도 육에 속한 신앙은 얼마든지 경건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절제되어 있고, 예의 바르고, 선한 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 영이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없다면 그것은 단지 인간적 도덕과 자기훈련일 뿐입니다.

수도원의 승려들도 절제와 겸손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령의 생명과 교제가 없다면 그 경건은 영이 아니라 육의 경건, 즉 인간이 만든 경건일 뿐입니다. 우리 안에도 그런 모습이 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이 없는 신앙이 바로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결국 모든 신앙의 핵심은 영이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입니다. 이 만남이 없다면 아무리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해도 그 삶은 여전히 육을 따르는 삶에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실제로 만난 사람,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이미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의 삶은 세상과 다르고, 그의 눈은 더 이상 땅을 보지 않습니다. 그는 하늘의 부름을 받았고, 그 부름 안에서 자신의 삶 전체를 그리스도께 드립니다. 이것이 가장 고귀한 영적 삶이며, 참된 성도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