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세 제자를 데리고 산 위에 오르신 사건은 단순한 휴식의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그 산은 관광지가 아니었고, 일상의 피로를 잠시 잊기 위한 쉼터도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정체성, 곧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마주하도록 허락된 자리였습니다.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기적을 보았고, 군중 앞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들었으며, 병자들이 낫고 귀신이 떠나가는 놀라운 현장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산 위에서의 경험은 전혀 다른 차원의 사건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제자들은 더 이상 “능력 있는 선생”을 본 것이 아니라, 영광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보았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얼마나 가까이 따르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분의 영광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산 위에서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설명이나 새로운 가르침이 아니었습니다. 필요한 것은 고요함이었습니다. 분주한 일상, 사람들의 소리, 자기 생각과 기대에서 벗어나 존경과 경탄의 마음으로 주님 앞에 머무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준비였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분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유는 그분이 말씀하지 않으시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시끄럽기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휴대전화의 알림, 끊임없는 뉴스, 성공과 비교의 압박, 미래에 대한 염려가 우리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으면, 그리스도의 달고 오묘한 음성은 들리지 않습니다.
썬다 싱은 이 점을 깊이 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모든 정신과 감정을 집중하여 그 앞에서 고요히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마치 누군가의 속삭임을 듣기 위해 주변 소음을 모두 멈추는 것처럼, 하나님의 음성도 침묵 속에서 들립니다. 제자들의 눈이 열리지 않았다면 변화산의 영광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고, 귀가 열리지 않았다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으라”는 하나님의 음성도 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는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경고도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세속적 성공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요구했던 두 제자는 주님과 가까이 있으면서도 여전히 자기 영광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 마리아는 달랐습니다. 그녀는 높은 자리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시선도, 역할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단지 주님의 발아래 앉아 그 말씀을 듣는 자리를 택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아무 성과도 없어 보이는 자리였지만, 예수님은 그 자리를 “좋은 편”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주님 곁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더 높은 자리, 더 인정받는 위치, 더 안전한 보장을 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은 마리아처럼, 아무것도 얻지 못해 보이는 자리에서라도 주님 자신을 얻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말이 아니라 임재로 말씀하십니다. 명상과 침묵 가운데 하나님은 말로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임재로 말씀하십니다. 겸손히 무릎 꿇은 마음 속에 성령의 충만함과 설명할 수 없는 평강을 부어 주십니다. 그것은 지식이 아니라 체험이며, 감정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유고의 말처럼, “하나님께 올라가는 길은 내가 내려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높아지려는 자에게 멀어지시고, 자신을 낮추는 자에게 가까이 오십니다. 이사야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시는 분”이십니다.
힐톤의 비유는 참으로 깊은 통찰을 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찾기 위해 먼 곳으로 떠나려 합니다. 특별한 장소, 위대한 성지, 극적인 체험을 찾아 헤맵니다. 그러나 그는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이미 네 영혼 안에 계신다." 문제는 그분이 잠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을 향해 잠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산에서 내려와 다시 세상으로 변화산에서의 경험은 영원히 머물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이 초막을 짓고 그곳에 머물고 싶어 했지만, 예수님은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가셨습니다. 그곳에는 여전히 병든 자, 귀신 들린 자,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은 세상을 피하기 위한 도피처가 아니라, 세상을 섬기기 위한 힘의 근원입니다. 고요한 산 위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새로운 힘과 방향을 가지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썬다 싱의 영적 생활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직 주님과 함께 머무는 시간, 그리고 그 주님과 함께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삶, 오늘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말이 아니라, 더 깊은 침묵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그분 앞에 잠잠히 머물 때, 우리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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