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사도행전 9:5)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는 겉으로 보기만 하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 사이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멀리서 들을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는데, 실제로 겪어보니 생각지도 못한 깊이가 드러나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런 차이는 영적인 세계에서 훨씬 더 심각하게 나타납니다. 영의 일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 단지 이론으로만 아는 것은 위험할 뿐 아니라, 자칫 오해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시는 길을 두려워하고 외면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바울입니다. 그는 바리세인 중에서도 열심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단 한 번도 예수께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기적과 표적, 그리고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듣고도 그는 그 현장에 발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율법주의라는 굳은 가치관이 그의 눈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당시 제사장들조차 심각하게 논의할 만큼 큰 문제였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장차 대제사장이 되겠다”는 야망을 가진 젊은 랍비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기사와 이적은 그에게 단순한 ‘사건’일 뿐, 신앙의 본질을 건드리지 못하는 하찮은 헤프닝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그는 오히려 예수의 추종자들을 잡아들이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의 눈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율법을 위협하는 위험한 열풍’으로만 보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배웁니다. 예수를 경험하지 않고는 올바로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라고 조롱했듯, 당시 성경에 박식한 랍비들 대부분은 예수님을 피상적으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냉소와 조소는 결국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 역시 예수님을 직접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문만 접했을 뿐입니다. 그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의 신비한 영적 경험을 통해 완전히 무너지고 새로워졌습니다. 그는 빛 가운데서 쓰러졌고, 들려온 음성 앞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여, 누구시니이까?”
그는 단순히 “누구십니까?”라고 물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여’라는 호칭은 인간적인 이성이 아니라 성령의 강력한 감동 속에서 터져 나온 고백이었습니다. 이 짧은 순간, 그의 인생과 가치관,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영적 경험은 결코 우리의 지식이나 이성에서 비롯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주시는 낯선 선물입니다. 그렇기에 경험 없는 사람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일 뿐이고, 오히려 무시하거나 위험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낯선 체험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새로운 차원으로 인도하십니다.
바울은 단 한 번의 강력한 체험을 통해 인생 전체가 뒤바뀌었고, 이후 아라비아 광야에서 홀로 그 의미를 곱씹으며 묵상했습니다. 그 고독한 여정 속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닫게 되었고, 스스로 사도라 불릴 만큼 그 복음의 본질을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인도하실 때 말씀과 경험, 두 가지 길을 사용하십니다. 말씀은 우리의 삶의 토대이자 기준입니다. 그러나 말씀만으로는 닫힌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을 때, 하나님은 특별한 영적 경험을 통해 우리를 흔드시고 깨우십니다.
어떤 이들은 “말씀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성경을 수십 번 읽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한 번의 영적 체험으로 말씀을 새롭게 깨닫고 주님께 더 가까이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그는 이후 수많은 영적 경험을 했습니다. 옥중에서 천사의 도움을 받기도 했고, 위험한 순간마다 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성경에 정통했던 그에게 그런 경험이 필요했을까요? 네, 필요했습니다. 지식만으로는 알 수 없는 살아 계신 주님의 인도가 바로 경험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 하나님은 익숙한 말씀으로, 때로는 낯선 경험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때 우리는 혼란스럽고 두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 낯선 경험 속에 감추어진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말했듯, 성도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맡은 자입니다(고전 4:1). 말씀을 통해, 그리고 영적 경험을 통해 드러나시는 그 신비 속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성도의 특권이자 책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과 경험, 두 가지 방식 모두를 소중히 붙잡아야 합니다. 말씀 없는 경험은 위험하지만, 경험 없는 말씀 또한 공허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말씀과 경험을 통해 우리를 그리스도의 비밀 속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바울처럼 영적 경험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비밀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우리는 이 신비를 두려워하기보다 겸손히 받아들이며, 말씀과 함께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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