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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말씀 묵상

요한복음 - 예수라는 친구가 맺는 사랑이라는 열매, 어느 늦은 밤, 포도원지기의 편지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9. 15.

요한복음 15장 7~17절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서울 근교의 한 작은 교회에 오랫동안 설교를 들어온 정 집사란 분이 있었습니다. 정 집사는 요한복음 15장을 묵상하던 어느 밤, 문득 자신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다가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었는가?" 그는 지난 한 해 동안 자신이 했던 선한 일들을 손가락으로 꼽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구제헌금, 봉사활동, 새벽기도...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목록을 세면 셀수록 마음이 편해지기는커녕 더 무거워졌습니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며칠 전 정 집사는 종로 탑골공원 근처를 지나다가 낯선 광경을 보았습니다. 좁은 골목 한켠에서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들이 큰 가마솥에 국을 끓이고, 갈 곳 없는 노인들에게 하루 200그릇이 넘는 밥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근처 절에서 나온 보살들이었고, 그중 가장 연로한 분은 아흔셋의 나이에도 매일 새벽같이 나와 밥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돈 천오백 원이 없어 줄 앞에서 서성이는 노인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정 집사는 그 장면이 좀처럼 잊히지 않았습니다. '저분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데도 저렇게 헌신적으로 산다. 그런데 나는 예수를 믿는다면서 저만큼도 못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열매란 대체 무엇인가?' 이 질문을 품고 그는 다음 주일, 담임목사를 찾아가 이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목사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성경을 펼쳐 요한복음 15장 16절을 함께 읽자고 했습니다. "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
집사님, 그 질문은 정확히 지난 두 주간 우리 교회가 강단에서 씨름해온 질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는 애초에 '선행의 개수'가 아닙니다. 만약 그것이었다면, 정 집사님이 보신 그 할머니들이야말로 하늘나라에서 가장 높은 상을 받으셔야 할 겁니다. 인사동에 가면 자기 건물을 팔아 가난한 문인과 화가들에게 거처를 내어준 무신론자 노부부도 있고, 명동성당 앞에서 이십 년 넘게 자신도 장애인이면서 다른 장애인을 위해 모금을 하는 가톨릭 신자도 있습니다. 그분들의 헌신 앞에서 우리가 더 많은 열매를 맺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정 집사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
아니요. 저는 그분들 발끝도 못 따라갑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실수하고 계신 걸까요? 엉뚱한 나무에 열매를 맺어주고 계신 걸까요?" 목사님은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열매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요한복음 12장으로 넘어갔습니다.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님이 이 땅에서 맺으신 첫 열매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착한 일이 아니라 죽음이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서 자기 생명을 내어주신 것, 그것이 첫 열매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열매란, 선행의 총량이 아니라 자기부인과 절대 순종, 곧 하나님과의 연합인 것입니다."

정 집사는 되물었습니다. "
그럼 저 할머니들의 헌신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씀인가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것은 분명 아름답고 존경받을 삶입니다. 다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난 선행은, 아무리 크고 위대해 보여도 성경이 말하는 '열매'의 범주에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열매는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원래 성령이 맺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는 갈라디아서 5장을 펼쳤습니다. "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여기서 '성령의 열매'라는 표현을 헬라어 원어로 보면, 이것은 우리가 성령을 위해 맺는 열매가 아니라 '성령이 맺으시는 열매'라는 뜻입니다. 열매의 주체가 우리가 아니라 성령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 열매는 이미 십자가에서 완성되었고, 지금 우리 삶 속에서 조금씩 맺혀지고 있으며,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완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집사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스쳤습니다. 그러나 곧 다른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요?"

목사님은 미소 지으며 다시 요한복음 15장 5절로 돌아갔습니다.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집사님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니라, 정 집사님 혼자서는 애초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은 가지가 스스로 열매를 맺을 방법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랑하라, 열매를 맺어라'는 성경의 명령은 협박이 아니라 초대입니다. '너희는 여전히 부족한 모습 그대로지만, 하나님이 이미 너희를 택하셔서 완성해가고 계시니, 그 은혜에 감격하여 이제부터라도 그분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보라'는 초대인 것입니다."

정 집사는 여전히 무언가 손에 잡히지 않는 표정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다른 방식으로 설명을 시도했습니다. "정 집사님, 성경에서 이 모든 것인 성령의 열매, 신의 성품, 하나님 나라의 삶의 원리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무엇인지 아십니까? '거룩'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거룩을 '흠 없이 사는 것', '깨끗하게 사는 것' 정도로 오해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거룩은 그보다 훨씬 크고 깊은 개념입니다."

목사님은 레위기의 성막 구조를 예로 들었습니다. "옛 이스라엘의 진영을 생각해보세요. 진 안에는 정결하다고 인정받은 사람만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 안의 성막에는 그중에서도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고, 가장 깊은 곳인 지성소는 오직 대제사장 한 사람만, 그것도 일 년에 단 한 번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대제사장의 가슴에는 흉패라는 것이 걸려 있었고, 거기에 열두 개의 보석이 박혀 있었습니다. 그 보석 하나하나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지요. 그러니까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갈 때, 그는 혼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자기 가슴에 품고 들어간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참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의 가슴에 걸린 보석들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것은 우리 자신이 특별히 정결하거나 선해서가 아니라, 참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슴에 우리 이름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은 고린도전서 1장을 읽었습니다.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여기서 '거룩하여지고'는 완료형 동사입니다. 미래에 거룩해질 것이라는 약속이 아니라, 이미 거룩해졌다는 선언입니다. 우리의 거룩은 우리가 쌓아 올리는 성취물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우리에게 되어주신 신분입니다."

정 집사는 그제야 조금씩 이해가 되는 듯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답답했습니다. "그렇다면 목사님, 제가 애써 노력하는 것은 다 헛수고인가요? 이미 다 이루어진 거라면 저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건가요?" 목사님은 이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답했습니다. "좋은 질문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라는 신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화는 100퍼센트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면서, 동시에 100퍼센트 성도의 몫이다.' 얼핏 들으면 모순처럼 들리지요?"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걷는 법을 가르칩니다. 아이가 처음 한 걸음을 뗄 때, 그 걸음은 분명 아이의 다리로 내디딘 것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그 순간까지 아이를 붙잡아주고 균형을 잡아주고 넘어지지 않게 지탱해준 것은 전적으로 부모의 손입니다. 아이의 걸음이 진짜 걸음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부모의 도움이 없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둘 다 100퍼센트입니다."

"성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힘으로 100퍼센트 거룩에 도달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게 이해하면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내 노력으로 구원받는다'는 사상, 즉 알미니안주의로 흘러가고 맙니다. 오히려 정확한 의미는 이것입니다. 거룩을 완성해가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우리가 삶 전체를 통해 실제로 경험하게 된다는 것, 우리가 걸어가는 그 발걸음은 진짜 우리의 발걸음이지만, 그 발걸음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정 집사는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탑골공원 근처를 지났습니다. 이미 어두워진 골목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는 문득 낮에 보았던 그 아흔셋 할머니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저분의 헌신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행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있지 않다면, 성경이 말하는 열매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답은 이미 그의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더 많은 선행의 목록을 쌓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부인이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었고, 무엇보다 자신을 붙들고 있는 그 포도나무를 떠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세어왔던 선행의 목록을 마음속에서 지웠습니다. 그리고 대신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저는 절대로 주님의 친구가 될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저를 종이 아니라 친구라 불러주셨습니다. 제 안에서 스스로 나올 수 있는 열매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이 은혜 앞에 저를 온전히 내어드립니다. 저를 통해 열매 맺으시는 이는 제가 아니라 주님이심을, 그러나 그 열매를 맺어가는 발걸음이 진짜 제 발걸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날 이후 정 집사는 더 이상 자신의 선행을 손가락으로 꼽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매일 아침 자신이 여전히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지, 그 은혜 안에 거하고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이야말로, 열매 맺는 삶의 진짜 시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