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모야.” 그녀는 주름살투성이 얼굴 속에 깊은 밤의 연못처럼 고요히 잠긴 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눈은 오래된 시간을 통과해 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빛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녀에게 문득 물었습니다. “그곳에는 헤어질 때 뭐라고 말해요? 작별에 해당하는 말이 있나요?”
그녀는 잠시 말이 없었습니다. 바람에 그을린 얼굴 위로 아주 옅은 마음의 파문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리고는 강물 쪽으로 시선을 옮긴 채, 조용히 말했습니다. “아, 없어.”
그 말은 뜻밖이었습니다. 우리는 늘 헤어짐에 이름을 붙이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안녕, 잘 가, 다음에 보자, 부디 잊지 말아 달라는 말들입니다. 헤어짐을 견디기 위해 우리는 말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언어에는 그 말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냥 ‘또 만나자’라고 말해. 우리는 결코 헤어지지 않아.” 헤어짐이 없다는 말은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다는 뜻이었고,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선언처럼 들렸습니다. 그녀의 말은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였습니다.
그녀는 “너의 입이 너의 가슴에 작별을 고하는 적이 있니?”라고 물었습니다. 그 말은 갑자기 깊숙이 파고들었습니다. 입과 가슴, 말과 존재, 말로는 떠난다 해도, 마음까지 떠날 수 있을까, 우리가 정말 헤어지는 것은 장소나 시간 때문이 아니라, 서로를 기억하지 않기로 선택할 때가 아닐까, 그녀는 말했습니다. “사람은 헤어지면 서로를 잊게 된단다. 그리고 잊히면 보잘것없는 존재가 되지.”
작별이라는 말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관계를 끝내겠다는 선언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당신을 내 삶의 일부로 부르지 않겠다는 무언의 합의일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말을 쓰지 않아.” 그녀는 담담히 말했습니다. “우리는 늘 네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한단다. 돌아오지 않으면, 어딘가 다른 곳에서 만나게 될 거야.” 그 말에는 이상하리만큼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상실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라, 관계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이어진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여기서 만나지 못해도, 삶의 다른 지점에서, 혹은 다른 차원에서 다시 마주칠 것이라는 신뢰인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작별을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라, “내가 너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약속하시는 분이십니다. 부활은 끝이 아니라 다시 만남의 약속이고, 죽음조차도 영원한 작별이 아닌 잠시의 헤어짐일 뿐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말도 그러했습니다.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리라.” 그분의 언어에는 최종적인 작별이 없었습니다. 오직 “다시 보자”는 약속만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작별을 말합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기대하지 않기 위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문을 닫기 위해, 그러나 작별을 말하는 순간, 우리는 관계를 죽음의 언어로 묶어 버립니다.
그녀의 말이 다시 떠오릅니다. “우리는 결코 헤어지지 않아.” 어쩌면 신앙이란, 이 세상에 작별의 언어가 없다고 믿는 용기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아무도 잊히지 않고, 아무 관계도 헛되이 끝나지 않는다는 믿음. 여기서 보지 못해도, 그분 안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소망입니다.
그래서 오늘, 나는 누군가에게 쉽게 작별을 말하지 않기로 합니다. 대신 이렇게 말해 보고 싶습니다. "우리 또 만나자."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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