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센 교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는 궁궐에서 존귀하게 살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화려함 속에서 마음이 불안했고, 주님께 "구원의 길을 보여 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은 너무나 단순했습니다. “아르센아, 사람들을 피해라. 그러면 네가 구원을 얻으리라.” 이 말씀은 그가 기대했던 화려한 계시나 신비로운 체험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고독, 침묵, 기도로 나아가라는 가장 본질적인 요청이었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소란스럽습니다. 많은 목소리가 우리 귀를 스쳐 지나갑니다. 사람들의 말, 세상의 평가, 미디어의 끊임없는 소식들 속에서 우리는 쉽게 중심을 잃어버립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르센 교부에게 "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단순히 사람을 싫어하고 거리를 두라는 의미가 아니라, 세상의 소리에 묶이지 않고 오직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자리를 선택하라는 뜻입니다.
2005년 개봉한 영화 위대한 침묵은 이러한 삶을 생생히 보여줍니다. 알프스 깊은 산속의 봉쇄 수도원. 그곳의 수도자들은 거의 말을 하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단조로운 삶, 반복되는 기도와 묵상, 성가와 노동으로 이루어진 일상. 그들은 세상과 철저히 단절된 채 고요 속에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카메라는 어떤 극적인 사건도 보여주지 않지만, 오히려 그 침묵과 단순함 속에서 영원의 무게가 흘러나옵니다.
오늘 우리는 정반대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전 세계의 소식과 유혹이 한순간에 밀려옵니다. 마음이 고요할 틈이 없습니다. 눈과 귀는 늘 분주하고, 우리의 내면은 쉼 없이 흔들립니다. 그렇기에 아르센 교부가 들은 "피하라, 침묵하라, 기도하라"는 음성은 지금 우리에게 더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침묵은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닙니다. 내 마음을 지배하는 수많은 생각과 욕망의 소음을 잠재우고, 하나님께 귀 기울이는 태도입니다. 고요 속에서야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는 그 고요의 중심에서 하나님과 연결되는 생명줄입니다. 사람의 소리가 멈추어야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세상의 소음이 꺼져야 하나님의 평안이 임합니다.
아르센 교부는 침묵과 기도가 죄를 이기는 근원이라고 말했습니다. 죄는 언제나 소란 속에서 자랍니다. 비교와 시기, 불평과 불안, 욕망과 교만이 시끄러운 세상 한가운데서 우리를 흔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 앞에 고요히 앉아 기도하면, 세상의 소음은 힘을 잃고, 하나님의 평안이 우리를 지배합니다.
우리도 일상 속에서 작은 수도원을 지을 수 있습니다. 잠시 휴대폰을 내려놓고, 텔레비전을 끄고, 방 한켠에서 무릎을 꿇고 침묵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평가와 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주님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마음속에서 "운둔하고, 침묵하고, 기도하는" 작은 골방이 세워질 때, 우리는 구원의 길을 잃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은 단순합니다. “사람들을 피하고, 침묵하며, 항상 기도하여라.” 그 길이야말로 죄를 이기고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확실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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