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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말씀 묵상/이사야

이사야 - 흔들리는 나뭇잎과 흔들리지 않는 약속, 스알야숩과 임마누엘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7. 30.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니라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야 7:9,14)

몇 해 전, 오래된 목조 예배당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화재 진압 후 사람들이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놀랍게도 무너진 벽이 아니라, 그을음 속에서도 형체를 알아볼 수 있었던 십자가였다고 합니다. 큰 불 앞에 서면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자신이 지켜온 모든 것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그런 자리에 섰습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 순간, 그는 자신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은 스스로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이사야가 불로 정결하게 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사야 개인에게 일어난 이 일이,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게 일어날 일의 예고편이 됩니다. 민족 전체가 부정하다는 판결을 받고, 그 후에 정결하게 될 것입니다. 이 큰 그림을 담고 있는 두 개의 이름이 있습니다. 스알야숩, '
남은 자가 돌아온다'는 뜻이고,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당시 남유다의 왕은 아하스였습니다.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이었던 그는, 안타깝게도 신앙의 계보를 잇지 못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국제 정세 속에서 강대국의 힘을 빌려 자기 왕좌를 지키려 했던 사람입니다. 훗날 그는 앗수르에 도움을 청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본 이방 신전의 제단 양식에 매료되어 그것을 그대로 예루살렘에 세우기까지 합니다. 마치 능력 있어 보이는 이웃 회사의 경영 방식을 무작정 베껴 오는 것처럼, 아하스는 하나님보다 강해 보이는 것을 좇았습니다.

이런 아하스 시대에, 북이스라엘의 베가 왕과 아람의 르신 왕이 연합하여 유다를 침공합니다. 신흥 강국 앗수르에 위협을 느낀 두 나라가, 친앗수르 노선을 걷는 아하스를 폐위시키고 자신들 편의 꼭두각시 왕을 세우려 한 것입니다. 성경은 이때 왕과 백성의 마음이 "
삼림이 바람에 흔들림같이 흔들렸다"고 말합니다. 큰 태풍이 오기 전, 나뭇잎 하나하나가 바르르 떨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아하스와 온 백성의 마음이 꼭 그러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이사야를 보내십니다. 그것도 그의 아들 스알야숩의 손을 잡고 가게 하십니다. 이름 자체가 메시지였습니다. '
남은 자가 돌아온다'는 이름의 아이를 데리고 감으로써, 지금의 위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계획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사야는 왕에게 이렇게 전합니다. "
너는 삼가며 종용하라." 벌벌 떨고 있는 왕에게 가만히 좀 있으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놀라운 비유를 들려줍니다. 저 두 왕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시골에서 아궁이에 불을 때 본 사람은 이 표현이 얼마나 절묘한지 압니다.

부지깽이 끝에 잠깐 불이 붙어 있어도, 살짝만 흔들면 그 불씨는 곧 꺼져 버립니다. 이미 다 타버려 연기만 풀풀 나는 부지깽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아무리 위협적으로 보여도, 하나님 보시기에 두 나라의 연합군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존재였습니다. 실제로 65년 안에 이 나라들은 망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 약속을 믿느냐 못 믿느냐였습니다. "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 서지 못하리라." 믿음이 없이는 설 수 없다는 이 말씀이 그대로 아하스에게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십니다. "
믿지 못하겠거든 표적을 구하라. 하늘 위에 있는 것이든지 깊음 속에 있는 것이든지 어떤 것이라도 보여 주겠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입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에게 확신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하스는 이렇게 답합니다. "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언뜻 들으면 매우 경건한 대답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였습니다. 이것은 겸손이 아니라 불신앙의 가면이었습니다. 마치 누군가 진심으로 도와주겠다고 손을 내미는데, "괜찮습니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라며 뒤로는 이미 다른 곳에 손을 벌려 놓은 사람과 같았습니다. 아하스는 이미 앗수르 왕에게 은밀히 원병을 청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의 표적은 필요 없다, 나에게는 이미 대책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모습을 자주 짓습니다. 기도는 하지만 진짜 믿는 것은 통장 잔고이고, 예배는 드리지만 진짜 의지하는 것은 인맥과 처세술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응답하지 않으신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다른 길을 찾아 나섭니다. 이것이 바로 아하스의 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하스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친히 징조를 주십니다. "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연약한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는 아이, 이 세상 관점으로 보면 가장 무력해 보이는 존재를 통해 하나님은 원수를 물리치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일차적으로 이 약속은 아이가 선악을 분별하기도 전에 두 왕의 땅이 황폐해지는 것으로 성취됩니다.

그러나 이 약속의 궁극적 성취는 마태복음 1장 23절에서 드러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입니다. 임마누엘,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이 이름이 마침내 완전한 의미로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임마누엘을 좋은 소식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사야 본문에서 임마누엘은 동시에 심판의 도구로 사용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방치해 두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안의 거짓된 의지처들을 심판하시고, 그 심판을 통과한 자들만이 진짜 남은 자로 돌아오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아하스가 믿었던 앗수르는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역대하 28장을 보면, 아하스는 전쟁의 참화를 겪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또다시 앗수르에 매달립니다. 심지어 성전 문을 닫아 버리고, 아람의 신들이 자신들을 도왔다고 착각하며 그 신들을 섬기기까지 합니다. 마치 자신을 힘들게 한 원인을 잘못 진단하고, 오히려 그 원인에 더 깊이 의존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 결과가 이사야 7장 17절에 나옵니다. 그토록 믿었던 앗수르가 도리어 유다를 괴롭히는 벌과 삭도가 됩니다. 유다 땅은 황무해져서, 남은 백성은 암소 한 마리와 양 두 마리로 겨우 연명하게 됩니다. 가장 좋았던 포도원들은 가시덤불이 되어 들짐승의 서식지가 되어 버립니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붙잡았던 동아줄이 사실은 썩은 동아줄이었음을, 뒤늦게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사야 10장 20~23절은 말합니다. 심판의 날 이후, 야곱의 남은 자가 돌아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돌아옴에는 분명한 특징이 있습니다. "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한때 앗수르가 구원자인 줄 알고 의지했던 사람들이, 그 앗수르에 의해 무너지고 나서야 비로소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며 돌아옵니다. 그러나 모두가 돌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남은 자만 돌아옵니다.

이것이 임마누엘과 스알야숩이 함께 짜여 있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은, 우리 삶에 심판이 지나가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가 참으로 의지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는 과정을 포함합니다. 마치 화재로 모든 것이 타 버린 자리에서, 결국 남는 것은 십자가뿐이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오늘 무엇을 의지하며 살고 있습니까? 우리에게도 각자의 '앗수르'가 있습니다. 돈, 인맥, 스펙, 사람들의 인정, 혹은 스스로 세운 계획들. 이런 것들이 흔들릴 때, 우리 마음도 아하스처럼 삼림의 나뭇잎같이 떨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
너는 삼가며 종용하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협하는 것들이 실은 연기 나는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가장 확실한 표적을 주셨습니다. 처녀에게서 나신 아이, 예수 그리스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심판을 통과하여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게 된 자, 이 세상의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임마누엘의 심판과 스알야숩의 은혜를 함께 경험한 자, 그가 바로 하나님의 남은 백성입니다. 이것이 복된 소식임을 기억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