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물을 하나씩 품고 태어난다고 믿습니다. 그 샘물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해서, 누군가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손을 내미는 작은 친절로, 이유 없이 걱정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흘러나옵니다. 그것은 배워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아기가 품에 안겨 이유 없이 웃을 때, 누군가의 슬픔 앞에서 계산 없이 눈물이 맺힐 때, 우리는 그 샘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낍니다. 어린 시절의 우리는 대체로 그 샘물이 풍부했습니다. 친구가 다치면 함께 울었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면 온 세상이 밝아졌습니다. 사랑은 조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흘려보내야 할 것이었고, 주는 만큼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차오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본래 향기롭고, 서로에게 생명이 되는 존재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샘물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합니다. 여전히 웃고, 관계를 맺고, 사람들 사이에 서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더 이상 물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순간입니다. 힘든 하루를 보낸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때, 누군가의 호의를 의심부터 하게 될 때, 사랑한다는 말을 건네면서도 그 말이 텅 빈 메아리처럼 느껴질 때 말입니다.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고, 늘 먼저 연락하고, 먼저 배려했습니다. 그러나 몇 번의 관계 속에서 반복적으로 버려지고, 오해받고, 이용당했다고 느끼는 경험을 하면서 그의 마음은 조금씩 닫혔습니다. 처음엔 “내가 너무 많이 줬나 보다”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사랑을 잘못 주는 사람인가 봐”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그는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나는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야.”
이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사랑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사랑의 샘물이 너무 오래 고갈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샘물이 말라 버린 사람은 늘 목이 마릅니다. 그래서 관계 안에서도 갈증을 느낍니다. 함께 있어도 외롭고, 대화를 나눠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상대가 조금만 멀어져도 불안해지고, 조금만 다가오면 부담스러워집니다. 마음은 가뭄에 쩍쩍 갈라진 땅처럼 예민해져서,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입습니다.
이때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마중물’을 찾기 시작합니다. 단 한 바가지의 물만 있으면 다시 샘이 살아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과도한 기대를 겁니다. “이 사람이 나를 완전히 이해해 주면”, “이 사랑만은 나를 버리지 않으면”, “이번엔 정말 괜찮을 거야.” 하지만 그 기대는 종종 실망으로 끝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랑은 샘물을 다시 살리는 물이 아니라, 말라버린 마음을 잠시 적시는 비와 같기 때문입니다.
어느 순간 우리는 내가 사랑이라고 믿었던 감정의 많은 부분이 사실은 상실감과 결핍을 채우려는 욕구였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누군가를 붙잡았고, 나의 가치를 확인받기 위해 사랑받으려 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깨달음의 순간은 전율처럼 찾아옵니다. 부끄럽고 아프지만, 동시에 진실에 가까워지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왜 그 샘물은 말라 버렸을까요. 대개 그 이유는 한 가지가 아닙니다. 너무 오래 혼자 견뎌야 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사랑을 주기만 하고 돌봄을 받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상처가 반복되면서, 마음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샘의 문을 닫아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샘물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깊숙이 숨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회복은 새로운 사랑을 급히 찾는 데서 오지 않습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이제 사랑해도 괜찮을까?”라는 질문을 타인에게 던지기 전에,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나의 갈증을 인정하고 있는가, 나의 메마름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바라보고 있는가, 그리고 누군가를 마중물로 삼기 전에, 나 자신의 샘을 다시 살필 용기가 있는가, 샘물은 억지로 퍼 올린다고 살아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돌보고, 기다리고, 상처 난 자리를 직면할 때 서서히 다시 흐르기 시작합니다. 아주 미세한 물소리로, 거의 들리지 않게 말입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됩니다. 사랑은 다시 시작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서 살아 있으되 잠들어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이 질문의 대답은 이렇게 바뀝니다. “이제 사랑해도 괜찮을까?”가 아니라, “이제, 다시 나를 살려도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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