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릇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사사기 11:31)
입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섬뜩하고도 마음 아픈 장면으로 기억됩니다.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자기를 맞으러 나온 무남독녀 외동딸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다는 서원 때문입니다. 그의 입술에서 나간 그 말은 되돌릴 수 없었고, 그의 딸은 자신이 처녀로 죽게 됨을 알고도 순종합니다. 이 끔찍한 사건 속에 우리는 ‘과연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셨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입다가 이 엉터리 서원을 한 시점이 "여호와의 신이 임한 뒤"였다는 점입니다(삿 11:29). 즉, 그는 ‘성령 충만한’ 상태에서 이 황당한 서원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성령 충만은 단지 인간의 열심이나 결단의 결과가 아니라, 인간의 추함을 드러내고도 그 위를 덮어버리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는 사건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입다의 어리석음은 그 자체로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그 안에서 하나님은 더 크신 구속의 이야기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제사는 거래가 아니라 응답입니다. 입다의 서원은 성경적 제사 이해에 근본적으로 어긋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승리를 얻기 위해 제물을 걸고 거래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레위기 7장의 제사 규례에 따르면, 서원제는 화목제에 포함된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자원적 감사의 응답일 뿐 어떤 보상이나 요구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서원은 "하나님이 먼저 은혜를 주셨기에 그 은혜에 감사하여 드리는 것"이어야지, 하나님을 설득하거나 조종하려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점에서 입다의 서원은 명백한 오해였습니다. 제사는 먼저 내가 죽고 하나님께 받쳐지는 자로서의 삶을 의미합니다. 입다처럼 자기 욕망을 성취하려는 수단으로 제사를 사용한다면, 그것은 우상 숭배와 다를 바 없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 특히 첫 새끼와 장자에 대한 규례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예표입니다. 레위기와 출애굽기, 신명기의 규례는 "하나님께는 오직 흠 없고 거룩한 것만 드릴 수 있다"는 것을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참된 제물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첫 열매로 드려졌기에, 이제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아들의 동생들인 우리를 ‘살아 있는 제사’, 곧 화목제의 삶으로 부르십니다(롬 12:1). 더 이상 죽은 제물이 아니라,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자로서 이웃에게 나를 나누어주는 삶, ‘먹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화목제의 삶은 나를 나눠주는 존재로서의 삶입니다. 화목제는 제물을 제사장과 제물 드린 자, 그리고 이웃이 함께 나누는 잔치입니다. 이 제사는 죄를 속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미 용서받은 자로서 하나님과 누리는 교제의 상징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로, 그 남은 삶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삶, 곧 ‘하늘나라의 양식’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입다는 이 화목제 정신을 몰랐습니다. 그는 서원을 거래로 착각했고, 그 결과 비극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어리석음조차 하나님의 크신 계획 안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제물이 되신다는 복음의 진리를 드러내는 장치로 사용하십니다.
지금 하나님과 거래하듯 기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내 삶을 기꺼이 드리는 자원제의 삶을 살고 계십니까? 입다처럼 하나님의 뜻을 모른 채 내 열심과 감정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입다의 서원은 우리에게 강력한 경고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른 채 인간적인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려 할 때 어떤 참혹한 결과가 따르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참된 제물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드려진 자로 살아야 하는지를 드러내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어 우리를 위해 바쳐지셨기에, 우리는 이제 거룩한 제물로서 하나님께 드려진 존재입니다. 그 진리를 알고 살아가는 성도는, 이제 자신의 뜻을 주장하지 않고, 자기부인의 길을 기꺼이 가며, 이웃에게 나를 나눠주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입다의 어리석음 너머에서 드러나는 복음의 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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