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사기 7장 9~25절
"기드온과 그들을 좇은 일백 명이 이경 초에 진 가에 이른즉 번병의 체번할 때라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좌수에 횃불을 들고 우수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가로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하고"(삿 9:19~20)
“항아리를 깨뜨리니, 그 안에서 횃불이 빛났다.” 기드온의 전쟁은 이스라엘의 전쟁이 아닙니다. 곧 기드온 자신의 힘으로 싸운 싸움도 아닙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주도하신, 은혜로 싸우신 전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을 세우시되, 그의 강함이나 수완, 지도력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기드온의 약함, 두려움, 자기중심성을 낱낱이 드러내시고, 철저히 무장해제시키신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한 미디안 병사의 꿈 속에 등장한 보리떡이 적진을 무너뜨리는 장면은, 너무도 상징적입니다. 보리떡은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예수님은 “나는 생명의 떡”이라 선포하십니다(요 6:35). 구약의 보릿단 제사는 하나님께 첫 열매로 드리는 감사의 고백이었고, 이는 십자가에서 온전히 찢기신 하나님의 어린양, 곧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됩니다.
그런데 그 보리떡이 '장막', 율법주의와 자기의(自己義)의 상징을 부수어 버립니다. 이는 성전 중심 종교의 붕괴를 의미하고, 복음 중심의 은혜가 승리하는 하나님의 구속사를 보여줍니다. 십자가의 약함이 세상의 강함을 무너뜨리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군사를 3만 2천 명에서 300명으로 줄이십니다. 이는 인간의 전략과 계산이 전혀 통하지 않는 자리입니다. 도무지 승산 없는 숫자, 전혀 희망 없어 보이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이 300의 자리는 철저히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는 자리입니다. 자기 의와 자기 힘, 자기 열심이 제거된 자리입니다. 세상의 눈엔 초라하고 무기력해 보이지만, 하나님께는 가장 안전하고 완전한 자리입니다. 이 자리에서만 진정한 구원이 일어납니다.
기드온의 병사들이 손에 든 것은 무기가 아닌 항아리와 횃불이었습니다. 항아리는 질그릇, 곧 우리의 육체를 상징합니다(전 12:6, 고후 4:7). 그 안에 감추어진 횃불은 하나님이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입니다. 이 항아리는 깨져야만 빛을 드러냅니다. 곧, 성도는 자기 자아가 깨지고 무너질 때 비로소 그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나타납니다. 성화는 강해지는 과정이 아니라, 깨어지는 과정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드러나기 위해 나의 자아는 깨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않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후 4:7)
기드온과 그의 병사들은 전쟁터에서 전쟁 나팔이 아닌 '양각 나팔(쇼파르)'을 붑니다. 이는 대속과 해방, 희년의 나팔이며, 전쟁이 아닌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선포입니다. 이는 여리고 성이 무너질 때 울려 퍼졌던 그 나팔과 같습니다(수 6:4). 싸움의 시작은 하나님과의 화평으로부터 시작되며, 이는 곧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평화(엡 2:14)의 선언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란, 무기를 든 싸움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신해서 싸우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항아리를 손에 든 자입니다. 보리떡의 생명으로, 횃불의 영광으로 싸우시는 하나님을 따를 뿐입니다. 내가 의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의 열심입니까, 나의 실력입니까? 아니면 보리떡 되신 예수님입니까? 나는 깨어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항아리 안에 빛을 감추고 있습니까? 나팔을 불며 무엇을 외치고 있습니까? "나를 위하여?" 아니면 "여호와를 위하여, 예수를 위하여?"
기드온의 전쟁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전쟁이었고, 그의 항아리 속에 감추어진 횃불은 오늘 우리 안에 계신 예수의 영입니다. 우리는 깨어질 질그릇이지만, 그 안에 보배를 가졌습니다.
기드온의 300 용사는 능력이 아니라 은혜로 싸웠습니다. 그들의 진짜 무기는 보리떡과 횃불, 곧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이 싸움은 오직 하나님의 열심으로 시작되고, 그분의 능력으로 완성됩니다. 우리의 역할은 단 하나, 깨어짐을 허락하고, 그분의 빛을 드러내는 질그릇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도 이 나팔을 들고 외칩시다.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나는 깨어집니다.”
'사사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안의 적 그리고 나-지피지기면 백전백패 (0) | 2025.07.13 |
---|---|
땅의 용사와 하늘의 용사 — 불과 물, 소와 반석, 그리고 십자가 (0) | 2025.07.11 |
죽으러 오신 선지자 – 하나님의 형상을 좇는 백성의 소명 (1) | 2025.07.10 |
기드온의 에봇 사건 (2) | 2025.07.09 |
여호와의 소리와 그 날의 하나님 (0) | 2025.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