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시대는 외적 기준에 의해 움직이고 통제되는 문명의 사회입니다. 윤리강령, 법률, 교회법, 제도, 도덕교훈 등 수많은 외적 규범이 사람들의 행동을 규율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인간의 품위와 자유는 외적 통제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기준과 자기 스스로의 두려움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비추는 눈이 흐려지면 아무리 많은 법과 규칙도 무의미해집니다. 반면, 우리가 자기 자신을 두려워할 줄 아는 순간, 가장 강력한 자율성과 도덕적 존엄이 시작됩니다.
자기를 두려워한다는 말은 곧 자신의 양심 앞에서 떳떳하지 못함을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자기 자신이 가장 엄격한 스승이자 판관이 되는 삶의 태도입니다. 외부의 법률이 단죄하기 전에, 양심이 먼저 우리의 행동을 자백하게 하고, 눈에 띄는 부끄러움이 생기기 전에 내면의 떨림이 우리를 경계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외적 권위 앞에서는 경건한 척, 의로운 척, 겸손한 척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중심은 하나님 앞에서든, 자기 양심 앞에서든 두려움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결국 겉모습과는 다른 삶을 살아갑니다. 그들에게는 마치 상시 감시하고 있는 ‘가상의 가정교사’가 필요합니다. 타인의 눈이 없이는 제대로 행동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 양심이 깨어 있고, 하나님의 시선 아래 살아가는 사람은 외적 감시 없이도, 홀로 있을 때조차도 자신을 바르게 이끌 줄 압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자신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신앙은 외식으로 흐르기 쉽고, 자기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덕은 위선으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은 우리의 중심에 불을 지펴 우리가 외적 판단보다 더 엄격한 자기 성찰을 하게 만듭니다. 성경은 “사람의 마음의 꾀는 깊은 물 같으니라”(잠언 20:5)고 말합니다. 이 깊은 물을 들여다보는 자는 자기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부패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 진실한 자각이 곧 자기에 대한 두려움으로 바뀝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단지 자기 비하나 자기혐오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살고자 하는 갈망이 만들어내는 경건한 떨림입니다.
자기 자신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말 한 마디로 다른 이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조심스럽습니다. 그는 함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선행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중심을 단속하고 경계합니다. 그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타인을 쉽게 정죄하지도 않습니다. 외적 규범이 필요 없는 사람, 누군가 옆에서 지적해 주지 않아도 스스로를 바르게 이끄는 사람이야말로 참된 경건과 성숙을 지닌 자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참된 신앙인은 자신의 내면을 매일 시험합니다. 그의 판단 기준은 사람들의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의 양심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가르치는 영적 교사입니다.
그러므로 외부의 시선보다 내 안의 눈을 두려워하십시오. 인간의 판단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심령을 직면하십시오. 그러면 외적 권위 없이도, 억지스러운 규칙 없이도, 진리 가운데 바로 서게 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두려워하는 이가 결국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며, 그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참된 백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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