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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자유를 오해한 사람들, 자유를 얻은 사람들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16.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 하셨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29~32)

사람은 자유를 갈망합니다.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인간의 역사는 곧 자유를 향한 몸부림의 연속처럼 보입니다. 노예 해방, 독립 운동, 혁명과 저항, 억압에 맞선 투쟁, 그러나 이상한 일입니다. 이토록 많은 피와 시간과 희생을 치르고도, 인간은 여전히 자유롭지 않습니다. 자유를 얻었다고 말하는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더 불안하고 더 분노하며 더 예민해져 있습니다. 왜일까요? 혹시 우리가 자유를 잘못 정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은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러자 사람들은 반발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누구의 종이 된 적도 없다.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하게 되리라 하느냐?” 이 반응은 매우 인간적인 것입니다. 사람은 대개 자신이 묶여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특히 종교적 자부심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고, 말씀을 알고, 규범을 지키고, 남들보다 도덕적이라 여기는 사람일수록 자신을 ‘자유하지 못한 자’로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진단은 단호합니다. “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문제는 정치 체제가 아니고, 사회 구조만도 아닙니다. 문제는 인간 내부에 있습니다. 사람을 묶고 있는 진짜 주인은 죄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는 단순히 나쁜 행동을 뜻하지 않습니다. 죄는 하나님 없이도 내가 나의 인생을 충분히 책임질 수 있다고 믿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생명과 공급을 거부하고 내 힘, 내 판단, 내 가능성으로 살아가겠다는 선언입니다. “
나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 이 거짓말이 에덴동산에서 처음 등장했습니다. 뱀은 하와에게 자유를 약속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서 벗어나면 더 넓은 세계가 열릴 것처럼, 순종은 억압이고, 자율은 해방인 것처럼 속였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의 열매는 무엇이었습니까? 형제가 형제를 죽이는 역사였습니다. 하나님처럼 되려는 욕망은 반드시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만 유지되는 욕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추구하는 자유는 언제나 다른 사람의 희생 위에 세워집니다. 내가 옳기 위해, 내가 드러나기 위해, 누군가는 틀려야 하고, 밀려나야 하고, 때로는 제거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이 말씀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유와 정반대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자유는 “네가 하고 싶은 걸 다 해도 된다”는 자유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고 싶은 욕망에 끌려가지 않을 수 있는 자유, 자기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자기를 지키기 위해 남을 해치지 않아도 되는 자유입니다.

죄의 종은 자기 의를 쌓아야만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교하고, 정죄하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은혜로 자유케 된 사람은 이미 모든 것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유로 남을 섬깁니다. 자유로 종이 됩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참 자유자는 자신의 상황을 바꾸는 데 인생의 목적을 두지 않습니다. 가난한 가운데서도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를 먼저 묻습니다. 질병 속에서도 “이 자리에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길은 무엇일까”를 고민합니다.

그래서 자유자는 모욕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손해 속에서도 분노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사라지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는 것을 기뻐합니다. 스데반이 그랬습니다.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자기를 죽이는 이들을 위해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 순간, 누가 패배자이고 누가 승자일까요?

죄는 밖에 있지 않습니다. 죄는 언제나 나입니다. 그래서 죄에서의 해방은 곧 자기 숭배로부터의 해방입니다. 나는 왜 화를 내는가? 나는 왜 억울해하는가? 나는 왜 인정받고 싶어 하는가? 나는 왜 내 이름을 남기고 싶은가? 그 모든 질문의 끝에는 ‘
나를 위한 나’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자는 그 ‘’에서 풀려난 사람입니다. 소멸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사라지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생명이 드러나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자연은 이 진리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씨앗은 썩어야 싹이 트고, 애벌레는 사라져야 나비가 됩니다. 십자가도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멸 속에서 영원이 열렸습니다. 자유자는 그 십자가의 원리를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붙드는 삶이 아니라 자기를 내려놓는 삶, 자기를 증명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이 진짜 자유의 모습입니다.

자유는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유는 십자가 아래에서만 비로소 이해됩니다. “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그 자유 안에 머무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