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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말씀 묵상/전도서

전도서 - 산 개와 죽은 사자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8. 25.

"이 모든 것을 내가 마음에 두고 이 모든 것을 살펴 본즉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들의 미래의 일들임이니라.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그 모든 것이 일반이라 의인과 악인, 선한 자와 깨끗한 자와 깨끗하지 아니한 자,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일반이니 선인과 죄인,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하는 자가 일반이로다.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이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니라. 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그들이 다시는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니라. 그들의 사랑과 미움과 시기도 없어진 지 오래이니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 중에서 그들에게 돌아갈 몫은 영원히 없느니라."(전도서 9:1~6)

같은 해, 같은 도시에서 두 사람의 장례식이 있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한 사람은 평생 성공한 사업가였습니다. 그의 장례식에는 화환이 건물을 뒤덮었고, 신문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부고 기사가 실렸습니다. 조문객들은 정장을 갖춰 입고 줄지어 조의를 표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눈물 중에 진짜 슬픔은 많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재산과 인맥 때문에 그 자리에 있었을 뿐,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정작 아무도 깊이 알지 못했습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한 달,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평생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몸이 약해 변변한 직업도 갖지 못했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작은 장례식장에는 화환 대신 진짜 눈물이 있었습니다. 그가 살아있을 때 나누어 준 작은 친절들, 함께 기도해 준 순간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조용히 모여 그를 그리워했습니다. 세상은 그를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여겼지만, 그를 사랑한 사람들에게 그는 결코 별 볼 일 없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전도서 기자는 이 두 죽음을 놓고 우리에게 묻습니다. 누가 진짜 잘 산 것입니까? 오늘 본문, 전도서 9장 1절에서 6절은 바로 이 질문 앞에 우리를 세웁니다.

전도자는 냉정하리만치 솔직하게 말합니다. "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그 모든 것이 일반이라." 의인이나 악인이나,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이나 드리지 않는 사람이나, 맹세하는 사람이나 맹세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나, 결국 다 같은 운명 앞에 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착하게 살면 복을 받고 악하게 살면 벌을 받는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그래야 세상이 공평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 삶은 그렇게 정직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정직하게 사업을 운영한 사람이 부도를 맞고, 남을 속인 사람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우리는 얼마든지 봅니다. 밤새 땀 흘려 농사지은 양파가 가격 폭락으로 밭째 갈아엎어지는 농부가 있는가 하면, 요행으로 큰돈을 번 사람도 있습니다. 착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예배를 열심히 드리는 사람이든 아니든, 죽음이라는 결승선 앞에서는 결국 다 같은 자리에 서게 됩니다.

전도자는 이것을 두고 "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것"이라고까지 말합니다. 냉소가 아닙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정말 그렇게 보인다는 정직한 고백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사람은 본래 악한 마음을 품고 살다가 죽습니다. 이것이 해 아래, 곧 하나님을 떠난 시선으로 본 인생의 실상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런 불공평해 보이는 세상을 그냥 내버려 두시는 걸까요? 창세기 8장에서 그 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노아가 홍수 후 제단을 쌓아 제사를 드리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주목할 것은, 하나님이 이 약속을 하시는 이유가 "
사람이 선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람의 마음이 본래 악함에도 불구하고"라는 점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여전히 악하지만, 하나님은 은혜로 이 세상에 계절의 질서, 심고 거두는 질서를 허락하십니다. 그런데 그 약속에는 기한이 있습니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언젠가 이 세상의 심고 거두는 법칙도 끝이 날 날이 옵니다.

씨를 뿌리는 농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봄에 씨를 뿌리며 가을의 추수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는 태풍도 있고, 병충해도 있고, 예측할 수 없는 시장 가격의 변동도 있습니다. 뿌린 대로 정직하게 거두어지지 않는 순간들이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실패의 순간에, 사람은 두 갈래 길 앞에 섭니다. 하늘을 원망하며 주저앉거나, 아니면 이 세상의 심고 거둠 너머에 있는 더 확실한 것을 바라보거나 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은 이 질문에 답을 줍니다. "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심고 거둠의 법칙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썩을 양식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원한 생명을 위한 것입니다.

문제는, 죽은 사람은 씨를 뿌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은 우리의 본래 상태를 이렇게 말합니다. "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죽은 상태에서는 영생의 씨를 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러니까 우리가 영생을 거둘 수 있게 된 것부터가,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순전한 선물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의 핵심 구절, 4절로 가 봅니다. "
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니라." 고대 이스라엘에서 개는 가장 천대받는 짐승이었습니다. 반면 사자는 힘과 위엄, 왕권의 상징이었습니다. 성경 속에서 이 이미지가 어떻게 쓰이는지 몇 장면을 살펴 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던 시절, 그는 자신을 가리켜 이렇게 말합니다. "
이스라엘 왕이 죽은 개나 벼룩 같은 자를 쫓느냐." 겉으로 보면 왕관을 쓴 사울이 사자였고, 도망 다니는 다윗이 죽은 개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름부음이 사울을 떠나 다윗에게 있었으니, 생명은 오히려 다윗 안에 있었습니다.

훗날 다윗이 왕이 되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 왕의 식탁에 앉힐 때, 다리를 저는 므비보셋은 스스로를 "
죽은 개"라 부릅니다. 압살롬의 반역으로 다윗이 도망갈 때, 시므이가 그를 저주하자 신하 아비새는 그를 "죽은 개"라 부르며 목을 베겠다 합니다. 성경에서 개는 이토록 철저히 멸시받는 존재입니다.

그런데도 전도자는 말합니다. 살아있는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삶과 죽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한 번은 죽습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
일반적인 죽음"입니다. 전도자가 진짜로 말하는 것은 그 너머의 죽음, 곧 하나님과 영원히 끊어지는 둘째 사망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사자처럼 위엄 있게 살아도 이 영원한 생명을 모른 채 살아간다면, 그는 이미 죽은 자입니다. 반대로 세상에서 개처럼 천대받으며 살아도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얻었다면, 그는 진짜 살아있는 자입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 비유는 이 진리를 가장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부자는 날마다 좋은 옷을 입고 잔치를 벌였습니다. 세상 기준으로는 사자였습니다. 나사로는 그 집 대문 앞에 버려진 채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연명했고, 온몸의 종기를 개들이 와서 핥았습니다. 세상 기준으로는 개보다 못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 다 죽었을 때, 자리가 뒤바뀝니다. 사자처럼 살던 부자는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뜨고, 개처럼 살던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위로를 받습니다. 나사로라는 이름 자체가 "
하나님의 도우심" 또는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는 뜻입니다. 부자는 이 땅의 호화로움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았기에, 그것 말고는 다른 위로가 필요 없다고 여겼습니다. 바로 그것이 그를 죽은 자로 만들었습니다.

지금 당신의 삶이 개처럼 초라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남들 눈에는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직장, 넉넉하지 않은 형편, 인정받지 못하는 자리에서 씨름하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누군가는 사자처럼 화려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서가 말하는 진짜 질문은 이것입니다. "
당신은 살아있습니까, 죽어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죄 사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는, 세상이 아무리 초라하게 여겨도 진짜 살아있는 자입니다. 반대로 세상의 모든 영광을 다 가졌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면, 그는 화려한 죽은 사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이 둘째 사망을 피할 유일한 길을 알려줍니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곧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일찍 죽임당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붙든 자들만이 그 심판에서 벗어납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신의 삶이 개처럼 낮고 초라해 보일지라도, 그리스도의 생명이 당신 안에 있다면, 당신은 세상의 모든 영광을 가진 자보다 영원히 나은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