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매한 자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 네 입으로 네 육체가 범죄 하게 하지 말라 사자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께서 네 목소리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 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전도서 5:4~7 )
어느 날 밤, 한 아버지가 병원 응급실 복도에 앉아 있었습니다. 교통사고로 실려 온 아들이 수술실 안에 있었습니다. 그는 평소에 교회를 잘 나가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복도에서 그는 두 손을 모으고 중얼거렸습니다. "하나님, 아들만 살려주시면 제가 교회 나가겠습니다. 헌금도 하겠습니다. 봉사도 하겠습니다." 아들은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여섯 달 뒤, 그 아버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삶은 다시 바빠졌고, 응급실 복도의 그 절박함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습니다. 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희미해진 것처럼 살았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서원입니다.
전도서의 저자는 오래전에 이 인간의 민낯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전 5:5). 이 말은 서원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원을 얼마나 가볍게 다루는지를 폭로하는 말입니다. 사람은 평온할 때는 하나님을 잊고 삽니다.
그러다 위기가 오면 갑자기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리고 감당하지도 못할 약속을 내걸며 하나님과 거래를 시도합니다. 마치 하나님이 우리의 조건을 수락해야 움직이는 분인 것처럼 말입니다. 위기가 해결되고 나면 그 약속은 슬그머니 잊혀집니다. 이것이 전도서가 말하는 "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진다"는 뜻입니다(7절). 꿈이 클수록, 욕심이 많을수록, 서원도 많아집니다. 그리고 그 서원들은 대부분 이행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 문제를 숨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주 유명한 인물들의 실패한 서원들을 솔직하게 기록합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도망치던 밤을 생각해 보십시오. 돌베개를 베고 누웠다가 꿈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은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이것은 조건 없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셔서 먹을 것과 입을 옷을 주시고 무사히 돌아오게 해주시면, 그때 여호와를 제 하나님으로 섬기고 십일조를 드리겠습니다"(창 28:20~22 참고). 하나님이 약속하셨는데도 "만약에 이루어지면"이라는 조건을 겁니다. 믿음이 없으니 보험을 드는 것입니다.
결과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셨습니다. 야곱의 허리를 치면서까지 그를 변화시키시고 이스라엘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벧엘에 성전을 지었다거나 십일조를 드렸다는 기록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졌지만, 야곱의 서원은 흐지부지되었습니다.
입다는 더 비극적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이미 그에게 임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미 승리를 보장하셨다는 신호였습니다. 그런데 입다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덧붙입니다. "암몬을 이기고 돌아올 때 제 집에서 나와 저를 맞이하는 첫 번째 사람을 번제로 드리겠습니다"(삿 11:30~31 참고). 무모하고 경솔한 서원이었습니다. 승리하고 돌아오니 문에서 뛰어나온 것은 자신의 무남독녀였습니다. 아버지의 잘못된 서원 앞에 딸이 스스로 희생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아버지의 실수를 딸이 대신 짊어진 것입니다.
사울은 전쟁 중에 갑자기 금식을 명령합니다. 사실 그 전투는 이미 요나단의 믿음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전쟁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뒤늦게 끼어들면서 자신의 공로를 추가하려 했습니다. 결국 굶주린 백성들이 금식이 끝나자마자 피 채로 짐승을 잡아먹는 죄를 짓고, 제비를 뽑으니 요나단에게 죄가 돌아갑니다. 서원이 오히려 죄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세 사람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자기 공로와 조건을 끼워 넣으려 했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마 5:34,37). 이 말씀은 단순히 법정에서 선서하지 말라는 윤리 규정이 아닙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한계를 직시하라는 말씀입니다. 머리카락 하나도 희게 하거나 검게 할 수 없는 존재가 무슨 대단한 약속을 한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내일을 모릅니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도 통제하지 못합니다. 그런 인간이 "반드시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이미 자기 과신입니다.
마태복음 23장에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신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들은 "성전으로 맹세하면 괜찮고,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켜야 한다"는 식의 교묘한 구분을 만들었습니다. 결국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맹세를 만들고, 맹세를 조작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도구로 사용한 것입니다.
우리가 서원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의지가 약해서가 아닙니다. 인간은 구조적으로 자신의 약속을 완전히 이행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질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됩니까? 고린도후서 1장 20절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인간의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인간에게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스스로 이루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써 말입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라고 부릅니다(히 7:22).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맹세로 세워진 것입니다. 인간의 서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맹세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걸고 하신 약속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38~39절). 이것이 하나님의 서원입니다. 그리고 그 서원은 십자가에서 완성되었습니다. "다 이루었다"(요 19:30).
다시 입다의 딸을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의 경솔한 서원 앞에 딸이 나섰습니다. "아버지가 하나님께 서원하셨으니 아버지의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것은 단순한 고대의 비극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잘못된 서원과 깨어진 약속들을 대신 짊어지신 분이 누구인지를 가리키는 그림자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을 때 서약합니다. 결혼식에서 서약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수없이 다짐하고 결심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들을 제대로 지키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그 모든 실패한 약속들은 어디로 갑니까? 그리스도께서 그것들을 짊어지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깨뜨렸을 때, 하나님 스스로 그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전도서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7절).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우리가 더 열심히 서원을 지키겠다는 결심이 아닙니다. 우리가 서원을 지킬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시편 131편은 이것을 아름답게 노래합니다.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어머니 품에 안긴 젖 뗀 아이는 아무것도 증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안겨 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응급실 복도에서 무릎 꿇었던 그 아버지의 서원이 실패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그가 하나님을 거래 상대로만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순간에도 거래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들을 살리신 것은 그 아버지의 서원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아버지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리고 영원 전부터 세우신 당신의 뜻 안에서 그 가정을 돌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서원이 아닙니다. 더 깊은 신뢰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예"에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배이고, 그것이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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