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는 어느 지방에서든지 빈민을 학대하는 것과 정의와 공의를 짓밟는 것을 볼지라도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높은 자는 더 높은 자가 감찰하고 또 그들보다 더 높은 자들도 있음이니라"(전도서 5:8)
어느 시골 마을에 억울한 일을 당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힘 있는 지주가 그의 땅을 부당하게 빼앗았다. 농부는 고을 원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원님은 지주와 한패였습니다. 관찰사를 찾아갔더니 관찰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농부는 한양까지 올라가 왕에게 하소연을 시도했지만, 왕의 귀에 닿기도 전에 포졸에게 쫓겨났습니다. 그는 빈손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진짜 억울함을 풀어줄 자가 없는 것인가. 전도서 5장은 바로 이 탄식에서 시작합니다.
"어느 지방에서든지 빈민을 학대하는 것과 정의와 공의를 짓밟는 것을 볼지라도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전 5:8) 전도서의 저자는 냉정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세상에 대한 낭만적 환상을 품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억압당하고 정의가 짓밟히는 일은, 특별한 나라, 특별한 시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어디서든지 일어나는 일입니다. 고대 이스라엘도, 조선도, 오늘의 세계도 다르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되는 것일까? 본문은 그 구조를 설명합니다. 높은 자 위에 더 높은 자가 있고, 그 위에 또 더 높은 자가 있습니다. 이 위계는 본래 감찰과 견제를 위한 것입니다. 아래에서 착취가 일어나면 위에서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감찰해야 할 자가 함께 부패할 때입니다. 지방관이 썩으면 관찰사가 잡아야 하고, 관찰사가 썩으면 왕이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왕마저 타락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9절은 이 물음에 씁쓸한 대답을 내놓습니다. 어떤 번역은 왕을 정의의 수호자로 읽고, 어떤 번역은 착취 구조의 정점으로 읽습니다. 현대 영어 버전은 이렇게 옮깁니다. "빈민을 착취하는 높은 자들 중에 최고로 높은 이가 왕이다. 왕은 땅에서 나오는 이익의 지분을 가장 많이 가진다." 조선시대 식으로 말하면, 사농공상의 질서 속에서 모든 땅과 백성이 왕의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은 돈이 양반인 시대입니다. 착취의 형태는 바뀌었어도, 구조는 변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는 이 구조가 완전히 무너진 시대를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 거리를 다녀 보아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렘 5:1)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관리들이 썩었고, 제사장들이 권력에 기생했으며, 선지자들은 왕이 듣고 싶은 말만 골라 예언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판치는 시대의 비극은, 백성이 진짜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귀가 거짓에 길들여지면, 진실이 들려도 이상하게 들립니다. 예레미야는 그 시대에 홀로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지만, 사람들은 그를 나라를 어지럽히는 자로 여겼습니다. 결국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이사야는 그 결말을 이렇게 그립니다. "백성과 제사장이 같을 것이며 종과 상전이 같을 것이며."(사 24:2) 나라가 망하면 높은 자도 낮은 자도 구별이 없어집니다. 착취로 쌓아올린 모든 위계가 하루아침에 무너집니다. 이것이 세상의 높아짐이 지닌 허망함입니다.
이사야 14장은 충격적인 장면을 묘사합니다. 한때 온 세상을 두렵게 했던 바벨론 왕이 죽어 스올에 내려갑니다. 그러자 그곳에 먼저 와 있던 열방의 왕들이 그를 맞이하며 말합니다. "너도 우리 같이 연약하게 되었느냐? 너도 우리 같이 되었느냐?"(사 14:10) 그 화려한 영화가, 그 비파 소리가, 스올에 떨어집니다. 구더기가 그 아래에 깔리고 지렁이가 그를 덮습니다.(사 14:11)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았던 자의 최후입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시적 표현이 아닙니다. 높아지려는 인간의 욕망이 향해가는 종착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니엘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바벨론, 메데-바사, 헬라, 그리고 그 이후의 나라들이 차례로 일어나고 무너집니다. 스스로를 높이며 만왕의 왕을 대적하는 자가 나타나지만,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깨지리라"고 한다.(단 8:25) 역사의 무대에서 아무리 강력한 왕이라도, 그를 세우신 분이 거두시면 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오래 기다렸습니다. 세상의 왕들을 압도할 메시아, 정치적 힘으로 로마를 쫓아낼 왕을 기대했습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태복음 20장을 보면,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께 나아와 두 아들을 주님의 나라에서 좌우편에 앉혀 달라고 청탁합니다. 다른 제자들은 그 말을 듣고 분히 여겼습니다. 자신들이 선수를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세상 나라는 높은 자가 권세를 부리는 나라이지만, 하나님 나라는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섬기는 곳이다." 그리고 덧붙이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만왕의 왕이 오신 방식은 세상의 기대와 정반대였습니다. 베들레헴 마구간, 구유에 뉘인 아기, 나사렛 목수의 아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그 낮아지심이 곧 세상을 이기는 방식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그 역설을 이렇게 선포합니다.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계 17:14) 십자가에서 죽임 당한 어린 양이 만왕의 왕입니다. 세상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역전입니다.
에베소서 6장은 당시 사회의 가장 극단적인 위계 구조, 곧 주인과 종의 관계를 다룹니다. 당시 종은 법적으로 주인의 재산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종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섬기듯 일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주인에게는 위협을 그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기" 때문이다.(엡 6:9) 이것은 단순한 도덕적 권면이 아닙니다. 존재론적 자유의 선언입니다. 세상에서 종으로 사는 자도, 만왕의 왕을 자기 주님으로 모신다면, 그 사람은 이미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7장에서 이를 더 명확히 말합니다. "부르심을 받을 때 종이었거든 그것을 염려하지 말라. 하지만 자유로울 수 있거든 그것을 택하라. 왜냐하면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종은 주의 자유인이기 때문이다."(고전 7:21~22) 만왕의 왕을 아는 자는 세상의 위계에 목매지 않습니다.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사람을 밟지 않습니다. 세상의 높고 낮음이 그에게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불의 앞에 눈을 감는 것도 아닙니다. 가장 높으신 분이 공의를 요구하시기에, 그의 백성은 이 땅에서 정의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를 통제하려 하지 않습니다. 심판은 그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처음 이야기의 농부는 세상의 모든 높은 자들에게서 외면당했습니다. 그러나 그 탄식이 닿는 곳이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왕보다 높으신 분, 그러나 스스로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오신 분, 인류의 모든 억울함을 십자가 위에서 자기 몸으로 담당하신 분입니다.
전도서가 말하는 "더 높은 자"의 이야기는 결국 여기서 끝납니다. 세상의 모든 높은 자 위에 만왕의 왕이 계십니다. 그분은 착취하시지 않습니다. 섬기십니다. 빼앗지 않으십니다. 내어주십니다. 높아지지 않으십니다. 낮아지십니다. 디모데전서 6장은 그분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딤전 6:15~16)
이 분이 내 안에 계십니까? 세상의 높고 낮음보다 이 물음이 먼저입니다. 만왕의 왕을 주님으로 모신 사람은, 세상 어디에 있든지, 어떤 자리에 서 있든지, 이미 가장 높으신 분 앞에 서 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디모데전서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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