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해 아래에서 한 가지 불행한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라.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사람이 비록 백 명의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의 영혼은 그러한 행복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 그가 안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그보다는 낫다 하나니, 낙태된 자는 헛되이 왔다가 어두운 중에 가매 그의 이름이 어둠에 덮이니, 햇빛도 보지 못하고 또 그것을 알지도 못하나 이가 그보다 더 평안함이라. 그가 비록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행복을 보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전도서 6:1~6)
어느 날 오후, 한 노인이 병원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평생 사업을 일구어 수백억 원의 재산을 모았고, 자녀만 다섯을 두었으며, 팔순이 넘도록 건강하게 살았습니다. 누가 보아도 성공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병실을 찾은 목사가 물었습니다. "장로님, 많이 힘드십니까?" 노인은 한참 만에 입을 열었습니다. "목사님, 저는 평생 행복한 적이 없었습니다." 재산도 있었고, 자식도 있었고, 오래 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행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전도서 6장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솔로몬은 말합니다. "내가 해 아래에서 한 가지 불행한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라."(1절) 그가 목격한 불행은 이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원하는 것이 하나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엉뚱한 다른 사람이 누리게 됩니다. 솔로몬은 이를 '악한 병'이라고 부릅니다.
이 장면이 낯설지 않습니다. 평생 가족을 위해 일만 하다가 정작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누리지 못하는 아버지, 열심히 저축해서 집을 마련했지만 건강을 잃어 그 집에서 제대로 살아보지 못하는 사람, 돈을 벌기 위해 청춘을 바쳤지만 막상 돈이 생겼을 때는 돈을 쓸 기력도 남아 있지 않은 사람, 주어졌지만 누리지 못하는 이 아이러니 앞에서 전도자는 탄식합니다. "어처구니가 없고, 통탄할 일이다."
그런데 더 깊은 질문이 있습니다. 만약 그것을 충분히 누렸다면, 과연 행복했을까요? 백 명의 자녀도, 천 년의 삶도 솔로몬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구약 시대 최고의 복은 자녀가 많은 것과 오래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말합니다. 백 명의 자녀를 낳고, 천 년을 두 배로 살아도, 그 영혼이 만족하지 못하고 안장조차 되지 못한다면, 차라리 태어나자마자 죽어서 나온 아이가 더 낫다고 말입니다.(3~6절)
충격적인 말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허무주의자이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역설적으로 이렇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과연 장수입니까, 번영입니까, 자녀입니까? 아니면 그 모든 것 너머에 있는 무언가입니까?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은 므두셀라로, 969년을 살았습니다. 그보다 두 배를 산다 해도 결국 죽음 앞에 섭니다. 그 죽음이 끝이라면, 그 긴 세월 동안 쌓은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솔로몬은 인간의 허무를 극한까지 밀어붙여, 그 절벽 끝에서 진짜 질문을 하게 만듭니다.
본문 3절과 6절에서 '행복'으로 번역된 히브리어가 있습니다. '토브'입니다. 이 단어가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곳은 창세기 1장 4절입니다. "하나님이 빛을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빛을 만드시고, 그것을 바라보시며 '토브'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행복의 기준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이 참된 '토브', 참된 행복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 그 빛을 보고 행복하다 하지 않고, 어두운 것, 썩어 없어질 것들을 많이 쌓아두면서 그것을 행복이라 부릅니다. 가짜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곳에서 죄악이 관영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노아의 홍수가 그랬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도 그때와 같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 24:37~39).
디모데후서 3장은 말세의 특징을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기보다 더한다." 배가 고플 때는 배만 부르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배가 부르고 나면 다른 욕망이 고개를 듭니다. 먹음직한 것에서 보암직한 것으로, 그리고 결국은 세상의 자랑거리로 욕망이 이동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사탄이 하와를 유혹한 바로 그 경로입니다. 이 경로를 따라 살아가는 인생은 가짜 행복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 10장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묻습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그리고 스스로 답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과 뜻을 다하여 섬기고,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 그리고 이것이 바로 "너의 행복을 위하여" 주신 명령이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행복은 '토브'입니다.
그리고 신명기 30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앞에 두 가지 길을 놓으십니다. 생명과 복(토브), 그리고 사망과 화, 생명을 택하면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라 하십니다. 이 번성이 히브리어로 '바라크', 곧 창조 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신 그 복입니다. 토브로 인한 바라크, 이것이 참된 행복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무엇을 선택했습니까? 바알과 아세라의 풍요와 다산을 택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번성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사망과 저주의 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 돌이킬 수 없으니 내가 너희 마음에 할례를 행하겠다." 마음의 할례, 그것이 새 언약입니다.
신명기 30장 11~14절은 놀라운 말씀을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하늘 위에 있어 누가 올라가서 가져와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바다 너머에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오직 그 말씀이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고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10장에서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해석합니다. 하늘에서 그리스도를 모셔 내릴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무저갱에서 그리스도를 모셔 올릴 필요도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이미 오셨고, 죽으셨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지금 우리 입에 있고,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선언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 이것이 참된 복입니다. 이것이 참된 '토브'입니다.
로마서 4장에서 바울은 다윗을 예로 듭니다.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다윗이 받은 복이 무엇이었습니까? 목동이 왕이 된 것이 복이 아니었습니다. 전쟁마다 이긴 것이 복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간음하고, 살인했습니다. 죄 가운데 잉태된 죄인이었습니다(시 51:5). 그런데 일한 것도 없이, 값을 치른 것도 없이,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그의 복이었습니다. 그는 성령의 감동으로 그 복의 근원을 알았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시 110:1) 다윗이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처음에 등장하는 노인(장로님)은 재산도 자녀도 장수도 있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또 다른 사람을 상상해 보십시오. 가진 것은 별로 없고, 몸은 아프고, 세상이 볼 때에는 저주받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 그러나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예수님이 내 죄를 가져가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전도서는 처음부터 이 결론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해 아래 모든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재물도, 쾌락도, 지혜도, 자녀도, 장수도, 번영도 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들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 보시기에 '토브'한 것, 그 생명의 복을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복이 이제 복음 안에 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죽으시고, 살아나심으로, 우리의 죄를 가려 주셨습니다. 그 이름을 믿고 부르는 자마다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참된 행복입니다. 천 년의 두 배를 산다 해도 이 복 없이는 헛됩니다. 그러나 이 복 하나만 있으면, 어떤 인생도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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