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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말씀 묵상/전도서

전도서 - 향기와 악취, 파리 한 마리가 망치는 것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9. 19.

전도서 10장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죽은 파리들이 향기름을 악취가 나게 만드는 것 같이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를 난처하게 만드느니라." 공동번역은 이 구절을 더 생생하게 옮깁니다. "파리 한 마리가 빠져 죽으면 향수 한 병을 버리게 된다. 그렇듯 하찮은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지혜로 얻은 영광을 물거품으로 돌려 버리는 수가 있다."

생각해 보십시오. 고급 향수 한 병에 파리 한 마리가 빠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
파리만 건져내고 그냥 쓰지 뭐"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향수병 전체를 버립니다. 왜냐하면 죽은 파리 한 마리가 향수 전체의 성질을 바꾸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향기와 악취는 반반씩 섞이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작은 악취라도 향기 전체를 삼켜버립니다. 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큰 지혜라도 그 안에 어리석음이 조금이라도 섞이면, 그 지혜는 더 이상 지혜로 기능하지 못합니다.

이 본문의 제목을 "
향기와 악취"라고 붙이고 보니,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을 영화화한 「향수」가 떠오릅니다. 냄새를 맡는 데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주인공은 최고의 향수를 만들겠다는 집착으로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고, 발각되어 공개 처형을 앞두게 됩니다. 성직자와 고관과 시민들이 몰려든 광장에서 그가 완성한 최후의 향수를 뿌린 수건을 던지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순식간에 황홀경에 빠져듭니다. 그런데 이튿날 새벽, 그 황홀경 속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가 드러납니다. 벌거벗은 채 뒤엉켜 뒹군 흔적뿐이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향기가, 결국 최악의 추함과 악취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것은 소설 속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인간이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종교적 업적의 배후를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얼마나 심한 악취가 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이는 "
기독교 죄악사"라는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한국 교계에서도 수십억, 수백억을 들여 지은 예배당이 빚을 감당하지 못해 매각되고, 그것을 이단이라 불리는 단체가 사들였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들려옵니다. 그 건물을 지을 때는 분명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말이 앞세워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도, 이사야도, 스데반도, 바울도 한결같이 증언합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 계시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그런 건물을 무너뜨리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탐심으로 가득한 성전을 지어놓고 "하나님의 영광"이라 부른다면, 그것이 바로 향기름에 빠진 죽은 파리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왜 하필 "
파리"를 등장시켰을까요?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 중 네 번째가 파리 재앙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재앙이 애굽 사람들이 사는 곳에만 임했고, 이스라엘 백성이 살던 고센 땅에는 파리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 에그론에는 이 파리를 아예 신으로 섬기는 종교가 있었습니다. 그 신의 이름이 "바알세불"입니다. 바알은 '주인', 세불은 '파리'라는 뜻이니, 그대로 옮기면 '파리의 대장'입니다.

열왕기하 1장에는 북이스라엘 왕 아하시야가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자, 하나님이 아니라 에그론의 신 바알세불에게 사람을 보내어 병이 나을지 물어보게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자 엘리야가 나타나 "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파리의 신에게 물으러 가느냐"고 꾸짖으며, 왕이 그 침상에서 결코 일어나지 못하고 죽으리라 선포합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파리를 신으로 섬긴 그 어리석음이 왕의 생명을 앗아간 것입니다.

윌리엄 골딩이 1980년 맨부커상을, 1983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 「파리대왕」의 제목도 바로 이 '바알세불'을 번역한 것입니다. 핵전쟁을 피해 아이들을 태운 비행기가 무인도에 추락하면서 어른은 다 죽고 아이들만 남습니다. 그리고 그 무인도에서 아이들 사이에 편 가름과 폭력과 결국 살인까지 벌어집니다. 문명의 옷을 벗겨내면 인간 내면에 도사린 것이 무엇인지를 이 소설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로마서 1장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생을 내버려 두신 결과, 썩지 않을 하나님의 영광이 썩어질 사람의 모양, 심지어 짐승의 모양으로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이 귀신 들려 눈멀고 말 못 하는 사람을 고쳐 주시자, 사람들은 "
이가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며 놀랍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정반대로 반응합니다.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성령으로 행하신 일을 파리의 대왕의 일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여기서 정말 두려운 사실이 드러납니다. 스스로 율법을 철저히 지켜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고 자부하던 바리새인들이야말로, 예수님의 등장으로 인해 실은 바알세불의 지배 아래 있었다는 사실이 폭로된 것입니다. 향기름 속에 빠진 죽은 파리가 향기 전체를 악취로 바꾸어 버리듯, 이들의 어리석음이 참된 지혜이신 그리스도조차 악취로 보게 만든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셨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깨끗하다 여기던 제사장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눈에는, 더럽고 냄새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예수님이야말로 악취로 보였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의 비유는 이를 더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성전에 올라간 바리새인은 "
나는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라고 기도합니다. 반면 세리는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고 외칩니다. 예수님은 뜻밖의 결론을 내리십니다.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은 세리이지, 바리새인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세리는 자신이 죄인임을 알았고, 바리새인은 자신이 죄인임을 몰랐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어리석음입니다.

바울 자신도 한때는 예수님을 악취로 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리스도를 만난 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고린도후서 2장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자신이 바로 악취였고, 그리스도만이 생명의 향기였음을 깨달은 사람이 이제는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서 중요한 경고를 덧붙입니다. "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복음이라는 지혜의 향기에 바알세불이라는 파리 한 마리가 섞여 들어가도, 그 즉시 악취가 됩니다.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이 섞이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향기와 어리석음은 절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5장 2절은 이 향기의 근원을 분명히 밝힙니다. "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제물이 되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것은 우리 자신의 선함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밖에서는 우리가 아무리 애써도 악취일 뿐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빌립보서 4장 18절은 빌립보 교회가 바울에게 보낸 연보를 "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부릅니다. 이것은 연보 자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함이 나타난 것, 곧 그리스도의 공로에 힘입은 사랑의 열매이기에 향기로운 것입니다.

결국 이 짧은 전도서 한 구절이 우리에게 묻는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의 신앙과 헌신, 우리가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그 모든 것에 죽은 파리 한 마리가 섞여 있지는 않은가? 나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하려는 마음, 바리새인의 기도처럼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높이려는 마음, 그것이 바로 향기름을 악취로 바꾸는 파리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머물 때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이 향기가 우리 삶에서도 풍겨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