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말 3:2)
물처럼 흐르는 구속의 은혜와 불처럼 임하는 심판의 날을 동시에 품은 사건,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우리는 종종 주님의 초림을 따뜻한 아기 예수, 베들레헴의 마구간, 목자들과 동방박사의 경배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세상의 빛이 어둠에 비쳤으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는 비극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오셨지만, 세상은 그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대낮의 태양이 떠올랐음에도 사람들이 눈을 감아버린 것과 같았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말 3:2)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두려움과 경외를 담은 질문입니다.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같고,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은 그분의 임재 앞에, 도대체 누가 설 수 있단 말입니까? 이 질문은 우리 각자에게 돌려주시는 하늘의 음성입니다. “너는 그 날을 준비하고 있는가?”
예수님의 초림은 은혜의 문이 열리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죄인을 구원하시려 조용히 오셨고,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셨습니다. 죄인들을 향한 그분의 눈길은 연민이었고, 말씀은 생명이었으며, 손길은 치유였습니다. 그러나 재림은 다릅니다. 그는 더 이상 비천한 종의 모습이 아니라, 만왕의 왕으로, 심판주로 오십니다.
“그는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이실 것이라.” (사 11:4) 이 말씀은 단순한 상징이 아닙니다. 거룩한 불꽃 같은 권위로 그분은 오시며, 그분의 말씀 한마디에 온 땅이 흔들릴 것입니다. 초림에서 그를 거절한 자들, 예수의 이름을 욕되게 하며 살았던 자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부인했던 자들, 모두 그날에 서 있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 위에서조차 예수님의 죽음은 자연을 뒤흔들었습니다. 해가 어두워졌고, 땅은 진동했습니다. 하물며 영광 중에 다시 오시는 날, 그 광채 앞에서 어떤 어둠이 숨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그 날을 감히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합니다. 세상의 즐거움과 안일에 몰두한 영혼은 재림을 멀고 막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반복하여 말합니다. “그 날은 도둑같이 이를 것이다.” (살전 5:2)
그 날, 모든 위선은 벗겨지고, 겉모습이 아니라 속사람이 드러납니다. 예배의 형식이 아니라 마음의 진정성이 드러나며, 찬송의 목소리보다 삶의 순종 여부가 판단 기준이 됩니다. 주님의 눈은 불꽃 같고, 감추인 것이라도 낱낱이 드러나게 하십니다.
그러나 모든 이가 그 날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의 피로 깨끗함을 입은 자들, 십자가의 은혜를 붙들며 날마다 자신을 부인한 자들에겐, 그 날은 영광의 날입니다. “우리는 그의 나타나심을 사모한다.” 이는 단지 말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간 자들의 고백입니다. 그날은 구원이 완성되는 날이며, 영원한 기쁨이 시작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니,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그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8) 이 얼마나 놀라운 말입니까? 심판과 은혜는 같은 날에, 다른 결과로 나타납니다. 은혜 아래 있는 자들은 주님을 두려워함으로 자신을 살피고, 기쁨으로 그 날을 기다립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야 합니다. “내가 진실로 그분을 믿고 있는가?” “그의 임재 앞에 설 준비가 되었는가?” “나는 그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두려워하며 피하려 하는가?”
우리는 주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우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주님, 모든 위선을 깨뜨리는 은혜를 주소서. 겉모습이 아니라, 속사람이 변화된 성도로, 그 날에 주님 앞에 ‘나무랄 데 없는 진실한 자’로 서게 하소서.
세상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비웃거나 무시합니다. 그러나 진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재림은 약속입니다. 반드시 이루어질 정해진 날이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날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오십니다. 은혜의 주로 오셨던 그분이, 심판의 주로 다시 오십니다. 그러나 그 심판조차 은혜를 향한 문을 닫기 위한 마지막 열쇠입니다.
오늘, 그 날을 기억합시다. 오늘, 그분을 바라봅시다. 오늘,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랑합시다.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계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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