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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속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건지신 은혜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6. 15.

"여러분도 전에는 범죄와 죄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그 때에 여러분은 범죄와 죄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우리도 전에는 그들 가운데서 모두 육신의 정욕대로 살고, 육신과 마음이 바라는 대로 행하여,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날 때로부터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가 넘치는 분이셔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범죄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살리시고, 하늘에 함께 앉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로 베푸신 그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를, 앞으로 올 모든 세대에게 드러내 보이시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구원이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님은, 아무도 그것을 자랑할 수 없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에베소서 2:1~10)

인간은 누구인가? 나는 누구이며,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우리는 왜 끊임없는 갈등, 슬픔, 불안,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가? 그리고 이 문제들에 대한 해답은 과연 존재하는가?

이런 근본적인 질문은 누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한 번쯤 품어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에베소서 2장은 이 모든 질문의 실체를 명확히 드러내 줍니다. 그것은 인간이 '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과의 단절, 즉 영적인 죽음입니다.“여러분도 전에는 범죄와 죄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엡2:1)

바울은 인간의 문제를 결코 피상적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그는 “
범죄와 죄”라는 명백한 실체, 그리고 그것이 초래한 상태인 “죽음”을 말합니다. 우리의 문제는 단지 예의 부족도, 깨달음의 부재도, 진화의 미완성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고,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며, 스스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진단과 비교해볼 때, 세상의 수많은 철학과 종교들은 인간 문제에 대해 전혀 다른 해답을 제시해 왔습니다.

공자는 인간의 문제를 예의 결핍으로 보았습니다.
“군신유의, 부자유친, 부부유별”과 같은 삼강오륜의 회복이 인간 사회의 혼란을 극복하는 길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유교는 도덕 수양을 통해 자기를 수련하고, 질서를 회복하며, 평화를 추구하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유교가 국교처럼 작동하던 그 시대에 평화와 정의가 이루어졌습니까? 조선은 가장 치열한 당쟁과 피비린내 나는 내란, 사화(士禍)의 역사로 얼룩졌습니다. 예로는 인간의 죄된 본성을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겉으로는 단정할지 몰라도, 속은 여전히 자기 의와 권력, 명예를 탐하는 죄된 인간이었습니다. 예는 인간의 바깥을 단장할 뿐, 속사람의 죄와 죽음을 해결하지 못한 것입니다.

힌두교와 불교는 고통을 ‘
허상’으로 봅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고통과 악은 실제가 아니라, 브라만이라는 진리의 투영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할 일은 단지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공(空)이다, 무(無)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고통은 허상이 아닙니다. 전쟁은 허상이 아닙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눈물, 외로움과 상실, 죽음 앞에서의 공포는 실재입니다. 허상을 벗기려 애쓰는 동안, 인간은 참된 생명의 근원을 외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무(無)를 통해 살 수 없습니다. 인간은 생명으로 지음받았고, 참된 구원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생명에서만 오는 것입니다.

자연주의는 신을 부정합니다. 우주는 우연히 생겨났고, 인간은 오랜 시간 진화해 왔으며, 지금보다 나은 존재로 계속 진보해 갈 것이라 주장합니다. 인간의 문제는 아직 충분히 진화되지 않아서 생긴 ‘
미성숙’의 문제일 뿐인 것입니다. 교육, 과학, 기술이 그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어떤가요? 과학과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내면은 더 공허해지고, 고통은 더 정교해졌습니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전쟁은 멈추지 않고, 번영 속에서도 자살률은 높아지고, 인간은 더욱 이기적이 되어갑니다. 진화로는 죄를 다룰 수 없고, 진화는 결코 죽은 자를 살릴 수 없습니다.

이 모든 허상을 꿰뚫고, 바울은 복음의 빛을 비춥니다.
“하나님은 자비가 넘치는 분이셔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범죄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엡 2:4~5)

복음은, 인간의 문제가 단지 도덕의 결핍이나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죽음이라고 진단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다시 살리셨다고 선포합니다. 그것도 우리의 행위나 수양이나 자각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분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엡 2:8)

여기서 우리는 참된 자유를 봅니다. “
내가” 깨달아서, “내가” 도덕적으로 훈련해서, “내가” 선택해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죽은 우리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엡 2:10) 복음은 우리를 죄에서 건져낼 뿐 아니라, 이제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따라 살아가게 하는 새로운 창조로 이끕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으로 빚어진 작품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생명, 믿음, 구원, 선한 일의 능력, 이 모든 것이 은혜의 열매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얼마나 착하게 살았는가, 얼마나 도덕적인가, 얼마나 많이 배웠는가, 얼마나 명예롭고 성공했는가… 이 모든 것이 구원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죽은 자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십니다. 그분의 은혜가, 그분의 자비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오직 은혜로 구원받습니다. 이것이 복음이며, 우리를 살리고, 세상을 이기게 하는 능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