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리석음을 멀리하는 것이 참된 지혜다. 왜냐하면 어리석음은 개인이 아닌 일반에 통용될 때 더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위협은 거대한 악이나 음모가 아닙니다. 오히려 평범하고 익숙한 것, 널리 받아들여지는 통념 속에 숨어 있는 ‘일반화된 어리석음’입니다. 우리는 어리석은 한 사람을 비판하고 조롱하며 그릇된 길에서 돌아서라고 충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들이 공통으로 품고 있는 어리석음, 즉 사회적 통념이나 유행, 감정적 대세 앞에서는 비판의 칼날도 무뎌지고 경계심마저 무력해집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다수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니까’라는 이유만으로 어떤 생각과 행동을 정당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분별 있는 판단을 유지하려는 자는 ‘별난 사람’, 혹은 ‘오만한 비판가’로 치부되고 맙니다.
이런 일반적 어리석음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무지입니다. 많은 이들은 스스로의 분별력이 탁월하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기대에 좌우되며 움직입니다. 자신의 처지가 아무리 복되고 좋은 것일지라도 진정한 감사는커녕, 타인의 삶을 부러워하고 시기하는 마음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그리하여 어제의 것이 더 나았다고 불평하고, 이웃 나라의 정책이 더 훌륭하다고 찬양하며, 자신이 누리는 현재의 복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무시해버립니다. 이 마음은 ‘비교’에서 오는 불행의 씨앗입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보지 못하고,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며 끊임없는 갈증 속에 살아갑니다.
이러한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외부의 소음을 멀리하고, 내면의 조용한 분별력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말하는 것, 대다수가 선택하는 것이라고 해서 그것이 진리인 것은 아닙니다. 진리는 늘 소수의 길로 흐르고, 지혜는 언제나 침묵 속에서 싹틉니다.
“매사에 기뻐 웃는 자는 매사에 슬퍼하는 자만큼 대단한 바보다.” 이 말은 우리의 감정이 진리의 잣대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늘 긍정적으로 웃고 다니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은 감정적 일관성조차 없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기쁨에도 슬픔에도 그에 합당한 이유와 무게가 있어야 합니다. 모든 일에 진실하게 반응하지 못하고 웃음이나 냉소로 덮어버리는 사람은 참된 지혜로부터 멀어진 자입니다.
어리석음을 멀리하는 것이 특별한 지혜입니다. 그 어리석음은 종종 지극히 평범하고, 어디에나 있으며, 대중의 이름으로 위장되어 우리를 감염시킵니다. 그 어리석음은 우리의 분별력을 무디게 하고, 비교와 시기의 감정으로 이끌며, 결국은 감사와 평안을 앗아갑니다.
그러므로 참된 지혜자는 많은 사람들의 소리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자기 내면의 중심에서 진리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남의 복을 시기하지 않고, 자기의 현재에 감사하며, 어제의 것이 아닌 오늘의 은혜를 붙듭니다. 진리는 가까운 곳에 있고, 지혜는 조용히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수의 환호 속에서 지혜를 찾지 말고, 고요한 진실 안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잠언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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