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로마서 말씀 묵상

진노한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죄인들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6.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 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로마서 1:18~23)

우리는 흔히
‘복음’이라고 하면 '위로'부터 떠올립니다. 그리고 평안, 회복, 소망 같은 단어들이 먼저 마음에 맺힙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시작하며 전혀 다른 지점으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그는 복음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진노를 말합니다. 이것은 복음의 부재가 아니라, 복음의 필연성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난다.”(롬 1:18)

바울은 왜 복음의 문턱에서
‘진노’라는 단어를 꺼내 들까요. 그것은 인간이 얼마나 깊이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존재인지, 그리고 그 의지가 얼마나 집요하게 하나님의 의를 밀어내는지를 밝히기 위함입니다.

로마서 1장 17절은 로마서 전체의 중심 문장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바울은 여기서 인간의 의와 하나님의 의를 명확히 갈라놓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모든 의인 열심, 도덕, 신앙적 성취는 생명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준비하신 의만이 사람을 살립니다.

그리고 18절부터는 이렇게 질문하는 듯합니다.
“왜 인간은 하나님의 의가 아니면 살 수 없는가?” 그 대답이 바로 죄입니다. 바울은 인간의 죄를 드러내기 위해 죄 목록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얼마나 구조적으로 하나님을 밀어내는 존재인지를 보여줍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으며, 결국 피조물을 숭배합니다.

이 죄의 핵심은 무지보다
‘대체’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것으로 하나님 자리를 채우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죄인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들”에게 임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진리’는 단순한 사실이나 교리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리는 한 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율법의 실체이며, 제사의 완성이며, 하나님이 준비하신 유일한 의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막는다는 것은 예수를 부정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말하면서도, 예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기는 모든 태도가 진리를 가리는 행위입니다. 은혜 위에 행위를 얹고, 십자가 위에 자격을 덧붙이며, 하나님의 의 위에 인간의 의를 보태려는 시도가 바로 불의입니다.

바울이 가장 날카롭게 겨냥하는 대상은
‘불신자’가 아니라 ‘교회’입니다. 복음을 들었고, 은혜를 안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자신을 증명하며 살아가는 신앙의 형태입니다.

본문은 진노의 대상이
‘불경건’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경건은 단순히 도덕적인 삶이나 종교적 성실함이 아닙니다. 야고보 사도는 경건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약 1:27)

이 경건은 행위의 목록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자세, 남을 판단하지 않는 마음, 외모로 사람을 가르지 않는 시선, 이 모든 것은
‘내가 은혜로 살고 있다’는 자각에서 흘러나옵니다.

반대로 불경건은 무엇입니까. 은혜를 말하면서도 자신을 의지하는 상태, 십자가를 말하면서도 비교와 판단을 멈추지 못하는 태도입니다. 바울과 예수께서 가장 엄중하게 경고한 죄는, 도덕적 일탈보다도 이런 종교적 자기확신이었습니다.

로마서의 죄론은 사람을 절망으로 몰아넣기 위한 고발장이 아닙니다. 그 고발의 끝에서 바울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고 곧바로 이어집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죄가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자리에서 은혜는 더 분명해집니다. 우리가 붙들린 것은 진노이지만, 그 진노의 손은 우리를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십자가로 몰아가기 위해 붙든 손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모두 같은 자리에서 출발합니다. 그 자리에서 더 이상 비교도, 자랑도, 정죄도 설 자리를 잃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의만 남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으로 나를 지탱하고 있습니까. 은혜입니까, 아니면 여전히 나의 성실함과 판단력과 신앙적 성취입니까.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 나는 긍휼의 시선으로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은근한 우월감으로 평가하고 있습니까.

로마서가 우리를 진노 아래로 데려가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곳에서만 십자가가 필요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 앞에서만, 우리는 비로소 삽니다.